김락기 시조시인
김락기 시조시인

"2027년 프랑스 파리에서는 제1회 ‘유럽 한국 전통시조(時調) 창작 및 낭송 백일장’이 열렸다. 중견 시조시인으로서 한국말로만 살아온 나는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아 집행진과 함께 참가했다. 유럽 각국에서 초·중·고 및 대학·일반부에 응모한 사람이 상당했다. 창작 참여자들은 주어진 시제(아리랑, 김치)에 따라 3장 6구 12소절로 된 시조를 한글로 지어 제출했다. 낭송 참여자들은 고시조나 현대시조를 한국말로 멋들어지게 낭창했다. 수준이 높아 당선작 심사가 녹록지 않았다. 한국인 못지 않은 실력들이었다.  

 지난 202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 시조로 한글과 한국 고유문화를 세계에 떨치는 무대가 된 셈이다. 한국어와 한글로만 치러낸 대회였다."―다가올 미래의 시조세계화 관련 행사 한 토막을 뭉뚱그려 봤다. 한국어가 UN 인정 세계 공용어로 통용될 날을 고대한다.

 현재 자기 고유문자가 없는 나라 중에서 한글로 그들 언어의 발음을 표기하는 곳이 더러 있다. 10여 년 전부터 인도네시아 부톤섬 찌아찌아족이 그러하다. 그런데 한글로 표기하는 것은 단순히 문자 보급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글로 된 타국의 도로표지판을 인터넷 동영상으로 보는 반가움은 물론, 거기 초등학생들이 한국의 동요 ‘시냇물’을 합창하는 모습에서는 과거 우리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자연스레 한국말과 한국문화를 습득하게 되는 측면도 있다. 몇 년 뒤 남태평양의 섬나라 솔로몬제도의 과달카날주와 말라이타주에서도 한글을 발음기호로 도입했다. 두 곳은 다 현행 한글 24자모에다 지금 우리가 쓰지 않는 옛 자모 1자씩을 더해 25자를 그들 말의 모어(母語)문자로 쓰고 있다. 전자는 ‘여린비읍’(ㅸ)을, 후자는 각자병서 ‘쌍리을’(ㄹㄹ)을 각각 1자씩 추가함으로써 그들 말의 발음을 보다 정확히 표기하고 있다. 

 같은 문자라도 시대에 따라 발음이 다르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28자에서 현재 4자가 줄어든 것은 후대로 오면서 그 소리를 구별할 수 없게 된 때문이다. 즉 음가(音價)가 사라진 것이다. 현행 한글 24자모로는 세종대왕 창제 당시 28자모에 비해 세상 모든 소리를 정확히 쓰기에는 좀 아쉬움이 있다. 사라진 자모 4자·병서(합용, 각자)·연서 가운데서 일부 자모를 되살려 쓴다면 보다 더 완벽한 세계공용문자로 발돋움하기에 좋다. 정부 주도로 ‘단일 기능성 표준한글’을 제정하자는 것이 반재원 훈민정음연구소장의 제언이다. 동의한다. 앞 두 나라의 적용 경험 반영이나 사계학자들의 연구·검토를 거쳐 가급적 빨리 제정, 시행해야 한다. 한글의 세계화가 앞당겨질 것이다.

 한글은 2009년, 2012년 제1, 2회 ‘세계문자올림픽’에서 연이어 우승했다. 이후 더 이상 겨룰 만한 문자가 없어 대회가 폐지된 것만 봐도 그 우수성을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세계 시민들이 보다 쉬이 한글을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 주도 아래 안으로 기초를 튼실히 다지고, 밖으로는 지속적인 홍보·지원 정책을 펴야 한다. 

 각국 한국대사관은 물론 정부재단 ‘세종학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세계에 한국어 보급 목적으로 설립된 세종학당은 올 6월 기준 60개국 180개소라 한다. 지난 7월 제11회 세계한국어교육자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했는데 각국에서 세종학당 교원 200여 명이 참여했다. 국내 초청 한국문화 연수를 한 뒤 돌아갔다. 한글 보급·확산에 힘쓸 것이다. 최근 한류 붐을 타고 서구 학원에는 타국어 수강은 줄어드는데, 한국어 수강은 늘어난다고 한다. 고무적인 일이다. 국내적으로는 세계 공용 표준한글 제정 및 관련 자판기 개발, 장차 남북이 함께 쓸 ‘겨레말큰사전’ 편찬, 각국 언어 통번역사 양성 및 자동 통번역기 개발, 말뭉치(Corpus)사업 구축 및 지방별 ‘토속어사전’ 발간 등등으로 한글 세계화의 밑바탕을 깔아야겠다. 차제에 방대한 ‘우리말유의어사전’ 등을 편찬한 김기형 사업가의 업적이 돋보인다. 

 이제 한국말만 해도 세계 곳곳을 활보하는 날을 상상한다. 뿌듯하다.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가 되고 한글이 그 표기문자로서 두루 쓰여 온 세상을 밝힐 때, 어떤 이는 이럴 한글을 훈세정음(訓世正音)이라 했다. 달포 전 홍릉 세종대왕기념관 성군의 초상 앞, 훈민정음해례본(영인본)을 보고 한동안 무젖기도 했다. 올 한글날은 573돌, 미국학자 로버트 램지는 말했다. "세계의 알파벳, 한글보다 뛰어난 글자는 세상에 없다." 시조로 경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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