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풀꽃도 귀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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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풀꽃도 귀한 까닭은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전 인천 남부교육청 교육장
  • 기호일보
  • 승인 2019.11.19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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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하게 되는 작은 풀꽃들을 살펴본 일이 있는가?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분명하지만 그저 이름 모를 들꽃 정도로 사소하게 여겨 버리고 만다. 

비록 그것들은 작은 풀꽃에 지니지 않으나 솜다리, 꽃다지, 바람꽃 등등 모두가 예쁘고 소박한 이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인식하지 않는다. 물론 볕이 잘 드는 곳의 꽃과 그늘의 꽃은 같은 종이라도 색깔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도 잘 모른다. 

따뜻한 봄이 오면 산과 들, 그리고 아직은 가지가 앙상한 나무 밑까지 작고 아름다운 꽃들이 옹기종기 혹은 흐드러지게 피어나서 온 세상이 꽃물결로 출렁이게 된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 산수유가 봄을 알리는 메신저(messenger)지만, 노루귀, 초롱꽃, 제비꽃, 붓꽃, 얼레지, 냉이, 씀바귀, 애기나리, 양지꽃 등 작은 풀꽃들도 계절을 놓치지 않고 갖가지 모양과 색깔로 다투어 꽃을 피워 내며 봄이 왔음을 알린다.

봄이 가고 여름이 차츰 가까워지면 봄에 피었던 작은 풀꽃들은 어느 새 작고 탐스러운 열매들을 매달고 있다. 물론 봄이 늦게 찾아드는 높은 산꼭대기나 우거진 숲속 그늘에서는 늦깎이 봄꽃을 피우는 것들도 있다.

우리는 흔히 봄에 가장 많은 꽃이 피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은 나뭇잎이나 풀잎에 가려서 그렇지 여름에 더 많은 풀꽃이 피어난다. 비비추, 원추리, 기린초, 패랭이꽃, 좁쌀풀, 달맞이, 엉겅퀴, 개망초 등과 이름 모를 수많은 풀꽃이 앞다투어 꽃을 피워내는 것이다. 우리나라 여름꽃들은 낮은 곳보다는 높은 곳에서 더 다양하게 많이 피어서 산 정상 근처에 가면 환상적인 풀꽃 바다를 만나볼 수도 있다.

온 들녘이 황금색으로 바뀌는 가을에 접어들면 봄이나 여름보다는 훨씬 적은 수지만 나름 예쁜 꽃을 피우는 풀꽃들이 적지 않다. 향기 그윽한 구절초, 하얀 미나리꽃, 노오란 산국, 보랏빛 쑥부쟁이 등과 함께 산부추, 용담, 향유, 꽃무릇 등도 서로 어울려 피어난다. 여름부터 늦가을까지 계속 꽃을 피우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가을이 돼서야 비로소 많은 꽃을 피우는 들국화와 같은 꽃들도 있다.

가을에는 높은 산 위에서도 꽃이 피긴 하지만 낮은 들녘 풀 섶에서도 작은 꽃들이 피어나고 열매를 맺는다. 그 가운데는 화려한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 꽃송이가 작고 다른 풀들과 어우러져 피어나는 것들이 더 많다.

기온이 뚝 떨어져 땅이 얼어붙은 겨울에는 많은 풀꽃이 땅속에 뿌리만 남겨두거나 혹은 씨의 상태로 봄을 기다리고 있지만 몇몇 풀꽃들은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꽃을 피워낸다. 남쪽 지방에 피는 변산바람꽃, 털머위, 복수초, 그리고 수선화를 비롯해 이른 봄까지 피는 꽃들이 그것들이다.

이렇게 사계절 내내 온 땅 구석구석에는 작고 사소한 듯하지만 예쁜 풀꽃들이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예로부터 금수강산이라 부른 모양이다. 

최근 한 교육 관련 단체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 내용 중에서 응답자의 거의 반수가 최근 1년간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한 가장 큰 이유로는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나 공부의 어려움(74.6%), 진로나 미래에 대한 불안(63.3%), 학습으로 인한 휴식 시간 부족(46.8%) 등 학업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아울러 벌점제 등 엄격한 학교 규칙(28.4%), 일방적 지시나 강요 등 권위적인 학교문화(20.8%)와 같이 학교의 통제에 부담을 느끼는 학생도 많았다. 

일부에서는 이런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학생 인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이는 교육의 관점에서 보아도 적절한 해결 방법이 아니고 오히려 문제의 본질과도 한참 동떨어지는 엉뚱한 해법이 아닐 수 없다. 그보다는 학교생활에 힘들어 하는 학생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자세히 살피고 보듬는 일이 우선돼야 할 일이다. 

불현듯 학교 생활에 힘들어 하는 우리 아이들이 마치 작지만 귀한 풀꽃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어 풀꽃 시인으로 알려진 나태주 시인의 짧은 시 ‘풀꽃’을 떠올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시의 제목이면서 제재이기도 한 ‘풀꽃’은 작고 사소해서 사람들이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일상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시인은 이런 ‘풀꽃’의 본질을 파악하려면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관심과 애정을 갖고 세심하면서도 오래오래 살펴봐야 진정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사랑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나태주 시인은 또 다른 시 ‘풀꽃3’에서 힘들어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이렇게 노래한다.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 봐. 참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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