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연 인천문인협회장
김사연 인천문인협회장

한국노총 인천지역본부가 주최한 근로자들의 예술잔치 제23회 인천광역시 근로자종합예술제에서 글짓기부문 심사를 했다. 모두가 수준 높은 작품들이다. 예술은 곧 감동이기에 뛰어난 작품은 어느 심사위원이 읽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마련이다. 

대상의 영예를 거머쥔 박화목 씨의 소설 「제3공단 9블록의 법칙」이 바로 이런 경우이다. 제목부터 근로자 예술제에 적합했고 읽을수록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마력(魔力)이 있었다.

짧지 않은 소설이었지만 전혀 지루함 없어 읽다 보니 어느 새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었다.

주인공은 인력사무소에서 농약과 살충제를 생산하는 공장에 파견됐다가 운 좋게(?) 정규직이 됐다.

그는 3D업종에 근무하는 외국 근로자들이 붙어 다니는 꼴이 보기 싫다며 현장 작업 콘텐츠를 바꾸라는, 사투리가 심한 대표의 지시를, 현재 숙소로 사용 중인 컨테이너를 지게차로 옮기라는 것으로 잘못 듣고 실수를 저지를 뻔한다.

신약 살충제의 강력한 효능을 입증하기 위해선 농도를 강하게 타 곤충을 죽이고 희생시킬 곤충은 계속 채집해야 했다.

농약 생산 과정에서 나온 맹독성 성분이 충분히 중화됐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선 폐수로 흘려보내는 저수장에 금붕어를 키우며 배를 뒤집고 떠오르는 놈들을 몰래 파묻어야 했다.

주인공은 한순간의 행운으로 근로자 신분에서 탈출해 부자가 되는 것이 소원이다.

복권에 당첨되면 10억 원을 어디 어디에 쓸까 상상해 보고, 신입과 술을 마신 후 복권에 당선됐다고 객기를 부리며 술값을 계산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녹지 않아 길에서 주운 드링크 병뚜껑 안의 ‘축 당첨, 승용차’조차 이미 행사가 마감된 무용지물이었다. 복권 당첨 농담은 진담처럼 소문이 나 곤란지경에 빠지고 아내조차 숨겨놓은 돈을 의심한다. 그래도 주인공은 늘 부자가 되는 꿈을 꾸며 살아간다.

전무로 승진해 사장 대신 회사를 좌지우지하고, 321억 원의 퇴직금을 챙긴 채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회사를 나오는 꿈을 꾸다가 빨리 일어나 출근하라는 아내의 성화에 잠을 깨 현실로 돌아온다.

버스 카드 충전비 단돈 3만 원을 요구하는 주인공에게 아내는 사과밭에 묻어놓은 복권 상금 이야기를 또 꺼내며 비아냥거린다.

금상을 차지한 이정근 씨의 시 「장맛」은 옛날 어머니의 은은한 손맛과 기억의 뒤편에 숨어 있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큰 단지는 작은 단지들 틈에 끼어/더 많은 성찰의 소금에 절여지고/마른 고추와 함께/익어가는 자신을 열심히 만난다/은은한 단지 맛과 함께 장맛이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수상자는 장 단지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장맛을 통해 성숙해가는 자신을 비춰 보았다.

은상을 차지한 홍은희 씨의 시 「초승달」은 어머니의 진솔한 내리사랑을 그렸다. 

"이끼를 덮은 수삼 두어 채/실뿌리를 표시가 안 나게/하나 떼어먹고 덮고/하나 떼어먹고 덮고/몸통만 남았다~중략~ 초승달이 탱자나무에 걸려 길을 비추고 있었다// 어머니의 양손에는 닭 두 마리가 들려 있었다/눈이 퉁퉁부은 어머니가 환하게 웃고 계셨다."

서민의 자식들은 감히 먹어볼 수 없는 수삼(水蔘). 어머니는 가족의 생계수단으로 수삼 장사에 나섰고 철부지 자식들은 목울대로 넘어오는 침샘을 실뿌리로 몰래 달랬다. 

속상한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자식들의 종아리를 때렸지만,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어머니의 손에는 닭 두 마리가 들려 있었다.

희미한 초승달빛에서도, 수상자는 눈이 퉁퉁 부은 어머니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마음을 통해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항상 배가 고팠던 우리 어린 시절의 자화상을 보는 듯했다.

은상을 차지한 신승남 씨의 생활수기 「시들어가는 꽃 어찌 놔두랴」는 고령화 시대를 살아가는 근로자의 애환을 그렸다. 

팔십 대에 상처한 아버지는 남보다 건강하신 분이었지만 100세를 넘기다 보니 청각장애 5급과 노인 장기 요양보험 2등급 판정을 받고 설상가상 척추 골절 수술을 받는 등 극도로 심신이 허약해졌다.   

수상자의 아버지는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에 나오는 "돈이 없어도 젊게 살 수 있지만, 돈이 없으면 늙을 수도 없어요"란 대사를 마음의 무기로 간직해 왔지만 경제력이 고갈된 현실은 자식들의 몫이었다. 

비정규직, 임시직, 계약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손자 손녀들의 재롱을 지켜봐야 할 나이이면서도 노노(老老) 부양, 노노(老老) 병구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자녀들의 효심이 독자들의 가슴에 감동의 파문을 새겨준 작품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효심뿐 아니라 병간호 과정을 통한 갈등과 ‘긴병에 효자 없다’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으면 하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욕심이었다. 이하 동상, 장려상 그리고 입선의 영광을 차지한 수상자들에게도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다음 기회에는 더 좋은 작품으로 만날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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