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녹터널 애니멀즈’는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야행성 동물이라는 타이틀만으로는 내용을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발 더 나아가 감독이 톰 포드라는 사실에 기대감이 증폭된다. 명품 패션 브랜드의 수석디자이너로 활약하며 구찌의 부활을 이끈 전설적인 디자이너 톰 포드는 2009년 그의 첫 영화 ‘싱글맨’을 대중에게 선보인 바 있다. 탁월한 영상미를 보여 준 첫 작품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차기작 ‘녹터널 애니멀즈’는 제73회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부드럽고 매끈하지만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 벨벳 원단을 닮은 영화 ‘녹터널 애니멀즈’를 소개한다. 

영화는 시작부터 충격적이다. 반짝이는 새빨간 화면 속에 전라의 여인들이 치어리더 모자와 부츠만 걸친 채 춤을 춘다. 그러나 이들의 외모는 일반적인 치어리더와는 거리가 멀다. 환희에 젖은 표정의 중년 여성들은 하나같이 비대하다. 탄력 없이 늘어진 피부가 물결처럼 일렁인다. 이 낯선 오프닝은 영화의 시작이자 주인공 수잔이 기획한 퍼포먼스의 일부다. 수많은 관람객이 찾은 성공적인 전시회였지만 그녀의 표정은 굳어 있다.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삶 속에서 수잔은 공허함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전남편의 소포가 도착한다. 19년 전 헤어진 사람이 느닷없이 보낸 책 속에는 그녀에게 영감을 받아 완성했다는 메모가 적혀 있다. 잠 못 드는 밤, 수잔은 책을 펼친다. 소설은 텍사스로 가족여행을 가던 중 폭력적인 사건으로 아내와 딸을 잃은 한 남자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몰입도 높은 비극적인 스토리에 수잔은 감정을 이입하며 빠져든다. 그러나 책이 끝나갈 때 즈음 소설 속 남성의 상처, 분노, 상실감은 19년 전 자신이 전남편에게 건넨 감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 작품의 전남편의 복수극이다. 그러나 그 복수라는 것이 물리적으로 해를 가하는 방법이 아닌 과거의 감정을 떠올려 현재를 뒤흔드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소설의 제목이자 영화의 제목인 ‘녹터널 애니멀즈’는 잠 못 이루는 전처를 부르던 별명이었다. 깊이 묻어 둔, 잊고 있던 감정이 흔들린 수잔은 이 소설로 인해 되돌릴 수 없는 지난날을 추억하고 후회하며 앞으로도 셀 수 없는 불면의 밤을 보낼 것이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할 법한 시간 동안 옛날에 했던 말을 여태 못 잊고 소심한 복수를 감행하는 남성을 신통치 않은 사람이라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오프닝에서 보여 준 여체와 같이 으레 그런 것이란 없다. 신체의 기준이 하나가 아니듯, 상처받은 기억이 사라지는 데에도 정해진 시간이나 방법은 없다. 

이 영화는 편하게 볼 수 없는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이미지와 강렬한 색채, 추측을 뛰어넘는 전개로 관객을 현혹한다. 때문에 설득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끝까지 볼 수밖에 없는 흡인력 높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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