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업무를 하면서 상속등기를 종종 의뢰받는데 그 과정에서 참 다양한 인간의 모습들을 보게 된다. 얼마 전 상속등기 업무 사례를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사건의 경위는 다음과 같다.

피상속인은 의뢰인인 자녀 한 명을 둔 상태에서 배우자(의뢰인의 모친)와는 10여 년 전에 이혼하고 그 이후 다른 여성과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사실혼 관계를 지속해 오던 중 사업이 어려워지고 건강까지 나빠져 결국 사망했다. 의뢰인은 피상속인이 다른 여성을 반려자로 맞이한 이후에도 이혼한 생모를 찾아가지 않고 계속 한집에서 살아왔으나 부친의 새 반려자를 상담 내내 ‘그 아줌마’라고 호칭했다. 의뢰인은 피상속인 장례 절차 중에 사망신고를 하고 피상속인의 하나 남은 재산인 현재 거주 중인 아파트를 자신 앞으로 상속 등기를 하고자 찾아온 것이다. 이미 피상속인의 사실상 배우자인 ‘그 아줌마’가 아파트에 욕심을 내거나 피상속인이 혹 어떠한 형태의 유언을 한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는 듯했으며, 상속 등기가 끝나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그 아줌마’도 나가게 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명도 소송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민법은 제정 이래 현재까지 혼인과 관련해 법정 신고를 한 경우에만 법률상 부부로서 상속인의 지위를 인정하고 있고 예외적으로 다른 특별법에 의한 일부의 경우에만 사실혼 관계에 있는 배우자에게 일정한 권리를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의뢰인에게 상속 등기에 필요한 서류와 절차에 대해 안내해 주면서 마음 한구석에 불편함이 생겼다. 이에 피상속인과 ‘그 아줌마’와 그동안의 생활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그 아줌마’는 소위 나쁜 새엄마는 아니고 오히려 의뢰인과 함께 생활하면서 무난하게 가정생활을 영위했고 피상속인이 사업에 실패하고 건강까지 나빠졌음에도 돌아가실 때까지 가정을 지키고 간병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그동안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으며 두 사람 사이에 자녀도 없었는지 물으니, 피상속인의 모친께서 두 사람이 같이 살겠다고 할 때 점집에서 사주팔자를 보니 두 사람은 서로 상극이라 같이 살려면 혼인신고도 하지 말고 자녀도 갖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를 어기면 큰 화가 온 가족에게 미친다며….

모친의 강력한 요구에 두 사람은 그리 10년 이상을 살아왔다고 하니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 기분이었고, ‘그 아줌마’가 아파트에 욕심이 있었다면 피상속인의 건강이 악화될 때 혼인신고를 했을 텐데 그리하지 않은 것도 요즘 세태에 흔한 일은 아니구나 생각됐다.

이 말을 듣고 나니 더더욱 마음이 불편해 ‘그 아줌마’의 지금 심정이 어떨까 연민이 생겨 의뢰인에게 돌아가신 부친의 마음이 혼자 남은 ‘그 아줌마’에 대해 어떠할지, 추후 명도 소송 시 이러저러한 이유로 명도를 거부할 경우 간단치 않은 소송 절차와 비용, 감정 악화 등을 얘기하며 의뢰인과 ‘그 아줌마’사이의 10여 년의 인간관계도 소중한 것임을 재차 강조하며 서류 준비하는 동안 잘 생각해보고 일정한 금액을 생활 자금으로 나눠드리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1주일이 지난 후 의뢰인이 상속등기 관련 서류를 갖고 찾아와 ‘그 아줌마’는 집을 나가고 대신 의뢰인이 아파트 순 자산 가액의 ¼ 정도의 현금을 마련해 지급하는 걸로 상호 서면으로 합의했다며 자신도 마음이 편하다며 고맙다고 했다.

애초에 피상속인과 ‘그 아줌마’가 혼인신고를 했다면 의뢰인도 당연히 새어머니로 인정하고 좀 더 살갑게 지내지 않았을까, 다른 가정에서 이런 사례가 있다면 원만히 합의가 됐을까, 사정에 의해 혼인신고 없이 사는 사실상의 부부에게 법률혼에 준하는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인정하고 보호해주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최근 결혼, 부부관계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이나 모습이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고, 혼인신고 하지 않고 사는 부부도 많은 현실 등을 반영해 새 시대에 맞는 결혼과 부부관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통해 법적, 제도적 변화가 있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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