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부총장
이선신 농협대학교 부총장

우리 헌법 제5조 제2항은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군의 의무를 ‘신성한 의무’라고 표현한 것은 군은 세속적인 가치(권력, 재산 등)를 탐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언제든 자신의 목숨을 초개(草芥)와 같이 버릴 만큼 투철한 희생정신을 갖고 있으며, 이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없고 군인이라야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이유로 군은 국민의 사랑과 존중을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아직도 군과 민 사이에는 마치 ‘장벽’이 있는 듯이 소통이 매우 미흡하다. 특히 장교를 비롯한 직업군인들이 사병을 대하는 태도는 아직도 봉건시대 또는 식민지시대의 군을 탈피하지 못한 것 같다. 사병을 영원한 자신들의 ‘쫄(卒)’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 저급한 인식의 일단이 박찬주 전 육군대장의 발언을 통해 세상에 노출됐다. 그는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감나무에서 감을 따게 했다는 둥, 골프공을 줍게 했다는 둥 사실인 것도 있다"고 ‘공관병 갑질’ 논란과 관련한 일부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나무라는 것을 갑질이라고 할 수 없고, 스승이 제자를 질책하는 것을 갑질이라고 할 수 없듯이 지휘관이 부하에게 지시하는 것을 갑질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관에 있는 감을 따야 한다면 공관병이 따야지 누가 따겠나"고 반문했다. 이 발언이 SNS 등을 통해 크게 논란을 빚게 되자 박 전 대장은 공관병 갑질 의혹을 제기한 시민단체 ‘군인권센터’의 임태훈 소장에게 "삼청교육대에 가서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는데, 이 발언이 또다시 논란을 초래하게 되자 "극기훈련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제 분노의 표현"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대체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저런 생각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하면서 혀를 끌끌 차며 분노한다. ‘대장’이란 최고 계급에 올랐던 사람이 국민적 공감을 전혀 받을 수 없는 발언들을 연이어 쏟아내는 걸 보고 많은 국민들이 우리 군의 수준에 대해 우려를 금치 못한다. 

과거에 우리는 ‘군’을 ‘군바리’라 부르며 스스로 비하했던 적이 있었다. 또한 ‘군은 무식하다, 아니 무식해야 한다.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기 때문이다’, ‘군은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생각이 많으면 사고가 난다’ 등의 말로 ‘무식’을 당연시하고 옹호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군은 유식해야 한다. 유식한 군, 생각을 잘 하는 군이 ‘유능한 군’이기 때문이다. 전투력을 향상시키려면 강한 무기도 필요하지만 훌륭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훌륭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는 능력은 ‘무식함’이 아니라 ‘유식함’에서 나온다. 

특히 정세를 판단하는 능력, 적의 약점을 활용하고 아군의 장점을 최고도로 발휘하는 능력,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정확히 분석·가공해 활용할 수 있는 능력, 고도의 첨단무기를 유효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 등이 중요한데, 이러한 능력들의 기초는 ‘종합적인 상황판단 능력’이 될 것이고, 이 능력을 갖추려면 군은 끊임없이 사고능력과 함께 원활한 대내외 소통능력을 키워야 한다. 군인도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아야 하고, 국민의 생각과 정서에 합당하게 군을 운영해야 한다. 

조만간 우리나라도 국방부 장관을 군 출신이 아닌 사람이 맡을 필요도 있다. 여성이 국방부 장관을 맡아도 된다. 섬세한 판단능력과 병사를 사랑하는 어머니 같은 자애로움이 강한 군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군 지휘관들이 박찬주 전 대장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리라 보지 않지만, 어떻든 군은 국민과의 공감능력을 키워야 한다. 특히 모든 군의 지휘관들은 빠짐 없이 헌법정신을 공부해야 한다. 자신이 목숨 바쳐 지키고자 하는 조국의 헌법가치(민주주의, 법치주의 등)에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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