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의 논의에 대해 다양한 주장과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주요 골자인데 위헌이라는 주장이 있고, 현행 300석에서 10% 범위를 확대하자는 발언에 이르러서는 고육지책이라고 하지만 국민 여론은 싸늘하며, 국회의원 세비(연봉)를 삭감해 국민 부담을 줄이자는 문제에 대해서 대의기관의 가치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한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국회가 일을 잘한다고 봤다면 이런저런 얘기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좀 더 잘하기 위해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고 했다면 누가 반대할까. 지역구 의원들이 전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지역에다 지나치게 목매고 있으니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건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안다. 

세비 역시 삭감이 아니고 증액한다고 해서 지금처럼 여론의 질타를 받진 않을 터. 따라서 선거법 개정 논의의 출발점은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얻는 방안부터 강구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시켜 주는 계기가 돼야 한다. 우선 각 정당이 순기능을 할 수 있는 비례대표 선발 기준을 제시하고, 지역구 경우도 하향식이 아닌 믿을 수 있는 상향식 공천 방안을 내놓는 것이 순서다. 더하여 청년과 여성의 몫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선거철이 닥치면 각 정당은 표심을 흔들고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인재 영입이니 젊은 피 수혈이니 하는 명분을 내걸고 동분서주한다. 얼핏 보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속내를 들여다보고 그동안 해온 모습을 되돌아보면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차적으로 ‘젊은 피 수혈’을 위해 당 바깥에서만 데려오려고 한다는 점이다. 원내 정당 대부분이 자체적인 청년 정치인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나 구색 갖추기에 그칠 뿐이다. 또 외부에서 데려온 젊은 정치인에 대한 지원도 선거가 끝나면 곧 시들해진다. 10년, 20년의 미래를 내다보는 정치를 하겠다면 당연히 청년 정치인이 육성돼야 하는데 마치 이들을 키우면 기존 정치인들의 자리를 빼앗는 것쯤으로 바라보는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우리 정치는 정당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정당의 모든 프로그램은 선거를 기준으로 계획되고 실행에 옮겨진다. 당장 표를 얻는데 유리하거나 돈이 들어오지 않는 데 대한 관심은 없다. 청년 정치인 육성은 그 안에 갇혀 있다"는 건국정당 사무국장 출신의 설명이고 보면 실소를 자아낼 뿐이다.

정치 역시 보이는 것이 전부일 수 없을 테고 행동이 같다고 해서 본질도 같을 수는 없을 터. 국민의 수준에서 세상을 바꿔보려는 강렬한 열정을 가진 정치인의 실망과 한탄을 제대로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고. 가뜩이나 여의도 국회에 대해 식상할 대로 식상하고 절망감을 느낀다는 국민 수효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자칫 ‘한가한 백일몽’으로 치부될 수도 있겠으나 이제야말로 우리는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정치적 상상력이라고 해서 선악(善惡)의 이분법으로 어느 정당이 폭삭 망하고 극단적인 정책을 말하는 게 아니다. 시민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방책과 디테일, 고착화된 이념 프레임이 아니라 좀 독창적이고 미래지향적 상상력을 발휘하자는 것이다. 요즘처럼 척박한 현실일수록 보다 기존의 발상을 바꾸려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십여 년 전만 해도 무상급식이니 무상교육, 청년 실업을 해소하기 위한 현금 지원 같은 주장은 현실과 동떨어진 포퓰리즘이라고 비난을 퍼붓지 않았던가. 

선거법이 개정된다고 해서 여야가 보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를 제대로 운영한다고 볼 수 없다. 아니 선거구 조정으로 인접 선거구의 일부 지역을 떼어 여기저기에 붙이면서 얼마나 우리 국민의 염장을 지를지 모른다. 유권자들도 후보 결정을 위해 경쟁자들의 토론회나 정책발표회에 초대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곤란하다.

이제 정치인 특히 내년 총선에 나서려는 후보자나 정치의 새 모습을 갈망하는 유권자들은 정치적 상상력의 세계를 향해 함께 나서야 한다. 당리당략에 급급한 나머지 역대 최저의 진기록을 수립한 20대 국회는 재탄생해서도 안 되고 21대까지 이 모양이 지속된다면 정말로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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