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효력 상실 시점인 22일 밤 12시를 불과 6시간 남겨놓고 그 효력을 정지시켰다. 진행 중인 WTO 제소절차도 정지키로 하고, 한일 수출규제 관련 국장급 대화에 착수키로 했다. 결정을 환영한다. 여러 정황상 일본이 만족할 만한 협상카드를 내놓았기보다는 우리 정부가 한미동맹을 고려해, 대승적 차원에서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우리의 자존감을 건드리고 수치심을 자극한 일본 아베 정권과는 타협 없이 당당히 싸웠으면 하는 감정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지소미아에 대한 여론도 종료 찬성이 더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반일정서는 우리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일본의 경제보복과 지소미아 사태를 촉발시킨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만 해도 그렇다. 피해자가 생존해 있는 가까운 역사의 일이라 반감의 세기가 더 클 수 있겠지만, 이러한 치욕적 사건은 지난 5천 년간 수백 번 반복돼 온 역사적 현상이다. 우리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가 외부로부터 침략과 수탈, 수모의 역사를 그렇게 겪어왔다. 따라서 식견을 갖춘 지도자라면 과거의 상처들을 반성의 계기로 삼아 부국강병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그 치욕과 수모를 극복해 가도록 노력하는 게 옳다.

국방대가 지난해 현대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해 성인 1천200명과 안보 전문가 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7.8%, 전문가의 95%가 한미동맹의 상징인 ‘주한미군이 한국안보에 중요하다’고 답했다. 굳이 여론조사를 않더라도 호전적인 주적과 4대 강국에 둘러싸인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라면, 이러한 국가 생존을 위한 ‘동맹의 중요성’을 뼛속 깊이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비용효율성 측면에서도 자체적으로 핵무장을 추진하거나 군사 대국화의 길을 걷기보다는 미국과 안보동맹을 병행하는 게 훨씬 합리적이다. 지난 67년간 한미동맹을 유지하며 국가발전을 이룩해온 비결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최강대국인 미국과의 동맹에는 방위비 분담 외에도 추가적인 반대급부가 뒤따른다. 미국이 정한 질서를 따르도록 노력하고, 그들이 필요로 할 때 함께하는 자세를 견지하는 게 그것이다. 한일 지소미아가 그러한 경우였는데 다행히도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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