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숙 인천문인협회 이사
차현숙 인천문인협회 이사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듯해도 집마다 걱정거리는 한 가지씩 갖고 있다는 말을 어른들에게서 들어왔다. 무슨 말인가 했는데 내가 직접 겪고 보니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오빠가 병을 앓기 전까지 우리 3남1녀 형제자매는 이웃으로부터 차 선생님 댁 고운 양념딸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오빠는 3대 독자로 귀하게 태어나 사랑받고 자랐다. 말도 잘하고 우량아 선발대회에 나가서 금메달도 획득했다.

그러나 내가 태어나던 해, 오빠 나이 세살 때부터 불행은 시작됐다. 당시 부모님은 교직 생활 중이시라 우리 가족은 학교 사택에서 살았다.

어느 날 오빠는 학교 사택 감나무에 달린 떫은 감을 따 먹고 급체를 했다. 우연인지 우리 동네에 돌림병인 뇌염이 돌았고 오빠도 감염이 됐다. 그 당시 의술로는 치료 방법이 없다 보니 꽃 같은 생명을 잃은 아이들도 많았다.

부모님은 모든 생업을 내려놓은 채 오빠를 등에 업고 좋다는 의원을 찾아다녔다. 어머니는 팔, 다리, 사지가 펴지지 않고 고개를 가누지 못한 오빠의 몸을 광목 기저귀 띠로 허리에 묶은 채 명의를 찾아 온종일 발품을 팔았다. 그로 인해 오빠와 세 살 터울로 신생아였던 나는 방임된 채 이모의 집에 맡겨졌다. 중학교에 다니는 어린 이모는 나를 안고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면서 동냥젖을 얻어 먹였다.

오빠를 등에 업고 치료를 받으러 나간 어머니는 며칠씩 집을 비우곤 했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내가 죽었으면 어쩌나 걱정을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돌아와 보면 꾸물꾸물 가느다란 두 팔과 두 발을 움직이며 엄마를 반겼다고 한다. 애처로움과 자책감으로 어머니는 눈물로 모진 세월을 보내며 "너는 오빠 때문에 피해자가 됐다~"고 노래를 부르셨다.

내가 철이 들고 나서도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떻게 하냐고 울먹일 때마다 어머니는 오빠 때문에 우리 딸이 엄마젖도 배불리 먹지 못해 키도 안 크고 몸에 살도 없는 네가 더 가엽다고 말씀하셨다.

지칠 대로 지치신 몸으로 집에 돌아온 어머니가 나에게 젖을 물리면 얼마나 배가 고팠고 엄마의 품이 그리웠던지 젖꼭지가 피멍이 들 정도로 빨아대다가 어머니 젖무덤에 파묻혀 잠이 들곤 했단다.

어느 날, 이모는 제대로 먹지 못해 잠시 혼절한 내가 죽었다고 판단하고 담요에 둘둘 말아 안방 윗목에 밀어놓고 우리 부모님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문을 연 어머니는 놀라고 기가 막혀 방바닥을 치면서 담요를 풀어 헤쳤다. 순간 엄마의 기척을 알아차린 듯 어린 생명은 두 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명줄을 타고났는지 나는 지금껏 살아있고 부모님의 지극 정성으로 오빠의 병은 4년이라는 기나긴 병간호 덕분에 어느 정도 호전됐으나 어눌한 언어를 구사하는 말더듬이가 됐다. 

오빠의 인생은 그때부터 고난이 시작됐고 주변 사람들은 이름 대신 ‘말더듬이’라고 호칭했다.

오빠가 말 대신 글을 먼저 배우기 시작하면서 처음 쓴 글은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 왜, 나만 말더듬이로 태어났나요?"였다. 빈 종이만 보이면 오빠는 늘 이렇게 쓰고 또 쓰곤 했다. 이 글이 우리 오빠가 또박또박 제일 잘 쓰는 글이다.

밖으로만 나가면 동네 아이들은 오빠를 따라다니면서 "바보! 바보!"라고 놀려댔다. 아이들은 오빠 말을 흉내를 내다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어느 날, 화가 난 어머니는 신발 한 짝을 벗어 집어 던지고 그래도 분이 안 풀렸던지 좇아가 목덜미를 잡고 머리통을 마구 때리며 두 번 다시 오빠 곁에 가지 말라고 소리 소리를 질렀다.

우리 삼 남매 또한 오빠를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악다구니로 싸우거나 분노를 참지 못할 땐 그 아이들 집 대문에 돌을 던지며 분풀이를 했다. 그러면서 집안에서는 바보같이 말을 왜 더듬거리냐며 말을 똑바로 해 보라고 오빠를 때리고 원망하면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때마다 오빠의 눈가에는 그렁그렁 굵은 눈물이 흘러 방바닥을 적셨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오빠는 기능공으로 큰 회사에 다니며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 오빠는 말만 더듬거릴 뿐 동생들을 끔찍이 아끼는 마음과 작업 능률은 정상인과 똑같다.

왜 나를 낳았냐며 부모를 원망하던 오빠. 아이들의 조롱을 받을 때마다 주눅이 든 채 온갖 시름을 눈물로 삭이며 밤을 지새웠을 오빠지만 나에겐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다정다감하고 소중한 분이다.

▶필자 : 한맥문학 시 부문 2002년 등단, 인천문협 시분과장, 서구문화예술인회 문학협회장, 청라문학회 부회장, 現 어린이집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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