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은 왜 남북관계 개선에 소극적으로 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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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은 왜 남북관계 개선에 소극적으로 임할까?
강석승 21C안보전략연구원 원장
  • 기호일보
  • 승인 2019.11.26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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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승 21C안보전략연구원 원장
강석승 21C안보전략연구원 원장

최첨단 과학정보사회인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고도로 전문화·세분화된 기술력에 힘입어 이제는 너나 할 것 없이 빅데이터,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등으로 대표되는 ‘제4차 산업혁명’을 얘기하고 또 직장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런 정보통신기술 융합으로 이뤄낸 가히 혁명적(?)인 시대에 살고 있는 필자는 강의 시간이나 학술회의 석상에서 간혹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고, 식당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는 우스갯소리로 현 시대를 풍자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20대 후반의 나이에 통일부에 들어가 통일·북한·남북관계를 오롯이 다루다가 50대 중반에 나오고, 그 이후 현재까지 헌법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 상임위원을 거쳐 운영위원을 역임하고 여기에 곁들여 국군방송에서 ‘북한의 오늘’이라는 프로를 7년여 진행하는 가운데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서울교육대 대학원, 인천대 정책대학원 등에서 수많은 석·박사 학생들을 지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북한이 남북 개선에 임하는 행태 분석과 그 저의 추론에는 그리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으니, 적지 않은 자괴감(自塊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원래부터 우둔(愚鈍)한 머리를 가졌는지, 아니면 분석·판단·추리력이 크게 모자라서인지 필자는 ‘북한’을 제대로 연구하거나 얼마 다루지도 않았던 법률가·국제정치학자 등 수많은 자칭(自稱) 전문가들이 지상파·종합편성채널 등에 나와 열변을 토할 때면 이런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이들 자칭 전문가들의 분석이나 예단(豫斷), 그리고 전망대로 정말 북한은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일까?

‘북한’이라는 존재가 국제정치적 이론이나 모델, 그리고 이론적 시각이나 관점에서 보아야 할 정도로 정상국가나 정치체제로 70여 년 존재해 올 수 있었고, 또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반평생 이상을 ‘북한문제’를 갖지고 밥을 먹어 온 필자 입장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라 단언(斷言)하고 싶다. 그 첫째 이유는 북한정권이 이제까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대를 이어 절대적 권력을 세습해서 운영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일제(日帝)의 질곡으로부터 해방되기 이전, 보다 정확히 얘기한다면,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국호(國號)를 변경한 이후 적어도 북한지역에 살고 있던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자유민주주의, 인권’이 무엇인가에 관한 기초개념이나 원칙 등에는 무지(無知)한 채 조선조의 ‘임금과 신하, 양반과 쌍놈’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 매몰돼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가 각 방송사에서 방영되는 사극(史劇)에 나오는 임금과 신하 간의 관계를 아무런 거부감이나 일말의 의심이나 의문을 갖지 않고 자연스럽게 소화하고 있듯이 말이다. 바로 이런 연장선상에서 보면, 최근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에서 나타내고 있는 행태를 투영해 본다면, 지극히 당연하고도 예측가능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고통치자인 김정은 위원장이 생각하는 대로 구상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우리 정부가 응(應)하거나 대(對)하지 않으면 남북관계가 우리의 바람과 기대대로 진척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手順)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 비슷한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김정일 시대에 야심차게(?) 추진해 왔던 남북한 관계 및 교류협력의 옥동자(玉童子)로 치부돼 왔던 ‘금강산 관광사업’이었으나, 지금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남(南)시설…" 등으로 매도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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