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웅<변호사/국세심사위원>
한재웅<변호사/국세심사위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청와대 앞에서 8일간 단식한 뒤 쓰러져 단식을 중단했다. 건강 악화로 인해 단식을 더 이상 이어가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자유한국당의 두 의원이 단식을 이어받았다. 황교안 대표는 공수처 설치 및 선거법 개정안 반대 등을 명분으로 단식을 시작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선거법 개정안은 작년 12월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정의당 이정미 대표의 단식을 계기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이 토론과 협상이 아닌 단식으로 대결하는 양상이다. 

 최근 몇 년간 국회의원들이 해온 단식을 되짚어보면 한국 정치는 ‘단식 정치’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최근 이학재 의원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퇴를 주장하며 19일간 단식을 했고, 김성태 의원이 2018년, 조원진 의원이 2017년, 이정현 의원이 2016년에 단식을 한 바 있다. 현재 여당인 민주당 소속 정치인의 경우 2016년 이재명 시장과 2014년 문재인 당시 민주당 당대표도 단식을 진행했다. 언급한 정치인들 이외에도 많은 정치인들이 단식을 통해 정치적 주장을 표출했다. 

 단식은 약자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호소하는 고도의 정치 행위이다. 인도의 간디는 비폭력 독립투쟁을 하면서 생전에 모두 145일간 단식을 하면서 인도의 독립을 이끌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제강점기 단식 투쟁 끝에 목숨을 거두신 이한빈 열사 등 많은 분들이 독립운동을 위해 단식한 사례가 있다. 민주화 이전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단식을 통해서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 됐고 대통령 직전제와 지방자치제 실현이라는 큰 성과도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식은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스스로 단절시키는 극단적인 행동이다. 역설적으로 단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절실함과 절박함 그리고 목숨까지 바친다는 결의 때문에 지지와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단식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주장이나 요구가 관철될 수 없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서 위치할 때 의미가 있다. 

 더불어 단식이 여론의 호응을 얻기 위해서는 ‘합당한 명분’과 ‘실현 가능한 목표’가 뒷받침돼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경우 통상적인 정치 활동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안에 대해서도 정치인들이 단식을 하는 경우 많아졌다. 

 정치는 대화와 토론, 협상으로 갈등을 조율하는 것이고 정치인은 정치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인데, 정치인들이 단식을 통해 주장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문제해결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다. 

 어쩌면 정치인이 단식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율배반적이다. 민주화 이전에는 국가권력의 폭력적인 억압이 있었기 때문에 정치인들의 단식이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는 정치인들이 일반적인 정치활동을 중지하고 단식까지 해야 하는 사안이 얼마나 있었는지 의문스럽다. 

 또, 단식의 명분이나 목적도 국민들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보다는 당리당략적인 주장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아 단식의 명분도 약하다. 제도권 정치인들의 단식 투쟁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것이라고 한다. 

 진정성이 없는 정치인들의 단식은 ‘정치쇼’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황교안 대표가 단식을 할 때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인 최승우 씨도 과거사법 통과를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고공단식 농성을 벌였다. 최승우 씨는 11월 29일 24일간의 단식 끝에 응급실에 실려 갔다. 황 대표와 동시에 진행된 단식이지만 최승우 씨의 단식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정치인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사람이다. 정치인이라면 최승우 씨와 같이 단식을 통해서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지 스스로 약자 코스프레를 해서는 안 된다. 밥을 먹고 제대로 정치를 하라는 것이 국민들의 상식적 요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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