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부총장
이선신 농협대학교 부총장

현행 농업협동조합법(‘농협법’)은 농업협동조합 중앙회장(‘농협중앙회장’)을 대의원회에서 선출토록 하고 있는데, 이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09년에 전체 조합장에 의한 ‘직선제’를 대의원에 의한 ‘간선제’로 법을 개정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정부는 직선제가 선거과열, 권한 집중·남용 등의 폐해를 초래한다고 보아 이를 개정한 것이다. 그런데, 법 개정 이후 많은 조합장들은 "대의원조합이 아니면 농협이 아니냐? 대의원이 아닌 조합장은 중앙회장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고 구경만 하라는 거냐?", "대의원을 맡지 않은 조합은 중앙회의 여러 사업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등의 불만을 제기했다. 

이처럼 문제가 제기되자 2016년 1월 12일에 실시된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는 다수의 입후보자들이 ‘직선제 환원’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또한, 국회의원들도 간선제 문제점을 인식하고 ‘직선제 환원’을 위한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후 여러 차례 토론회와 법안 심사가 이뤄졌으나 ‘공수처법’, ‘선거법’ 등의 쟁점에 발목이 잡혀 입법의 진전이 이뤄지지 못했다. 

지난달 18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농협중앙회장 직선제 관련 법안을 다시금 보류했다. 결국 내년 1월 31일 실시될 농협중앙회장 선거는 종전대로 간선제로 치러지게 될 것 같다. 전국 1천118개 농협이 회원으로 있는 농협중앙회는 293명의 대의원 조합장이 회장을 선출하게 되는데, 과반수 득표자가 당선되므로 150표만 얻으면 전국 250만 농민의 대표가 되는 셈이다. 

이에 대해 많은 농축산단체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농협중앙회를 농협법 제113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설립목적(‘회원의 공동이익 증진과 그 건전한 발전 도모’)에 합당하도록 변화시키기 위한 첫걸음이 좌절됐다"고 비판했다. 또한, "법안 심사 과정에서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가 (1조합 1표가 아닌 조합원 수에 따른) 부가의결권 등 선결조건을 내세우며 직선제 반대 입장을 유지했다는 의심이 든다"며 "심사 막바지, 부칙에 부가의결권 세부 방안을 마련하는 것으로 입장을 완화했지만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반대에 빌미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결국 농식품부는 직선제를 도입해 농협 개혁의 단초를 마련코자 했던 조합과 조합원들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고 직선제를 무산시키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고 성토했다. 또한 "회장 연임제 도입이 무산되자 농협중앙회도 직선제 도입을 방관하며 사실상 반대했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들은 기자회견에서 "지난 이명박 정부 때 직선제를 대의원 간선제로 개악했다. 중앙회장을 언제까지 구시대적인 ‘체육관 선거’로 선출할 것인가"라고 비판했는데, 수긍이 가는 견해이다. 1988년 조합장·중앙회장 임명제가 직선제로 바뀐 것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민주화 물결을 만들어낸 수많은 사람의 피와 땀의 결실임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충분한 여론 수렴도 없이 일방적 주도로 직선제를 간선제로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법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협동조합 기본원칙(특히 ‘민주적 관리의 원칙’과 ‘자율과 독립의 원칙’)과 헌법·농협법의 규정 취지 및  ‘결사의 자유’ 보장 측면, 연혁적 측면, 비교법적 측면 등을 고려해 보면 농협중앙회장 선출방식으로는 ‘직선제’가 ‘간선제’보다 더욱 합리적이라고 본다. 따라서, 국회는 조속히 법 개정을 추진해 농협중앙회장 선출방식을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환원해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조합장·조합원들의 열망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직선제 환원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직선제를 기피하는 이유는 농협중앙회의 힘이 커질 것을 부담스러워 하기 때문이라는 의심을 받는다. 직선제를 운영하면 선거 과열이 우려된다고 하나 중앙선관위에서 선거 관리를 엄격하게 하므로 크게 염려할 이유가 없다. 부정부패선거, 밀실·깜깜이선거를 부추기는 간선제 폐해가 오히려 더 크다. 요컨대,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통해 농업·농촌·농협 발전에 기여할 참된 일꾼이 (지역연고와 무관하게) 공명하게 선출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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