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기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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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기상대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 기호일보
  • 승인 2019.12.13
  •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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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인천은 수도 서울과 가까운 지리적 입지로 1882년 5월부터 미국을 비롯한 서양 여러 나라들과 수호통상조약을 맺는 현장이었다. 1883년 1월 1일 인천이 개항되고 6월 16일 인천해관이 창설됐다. 해관 근무자들은 대다수 청나라의 해관에서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는 서양인들이어서 그들의 생활 모습은 이후 전개되는 개화의 표본이기도 했다. 

당시 해관 총세무사 묄렌도르프는 개항장인 인천, 원산, 부산의 해관에서 기상관측을 하도록 지시했다. 선박 계류시설이 불편했던 당시 본선(本船)으로부터 화물이나 인원을 안전하게 수송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현장의 기상은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인천에서의 정규적인 해양기상관측은 1883년 9월 1일 인천해관에서 시작됐고 이것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최초의 기록이다. 그리고 다음 해 1884년 1월 1일부터 인천해관에서는 기온, 기압, 강수량 등 기상 요소를 종합적으로 관측하는 연안 기상관측이 기존의 관상감에서 행하는 전통적인 기상관측 자료와는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시작됐다. 원산에서는 1883년 10월 1일, 부산에서는 1884년 1월 1일부터 기상관측 자료가 나타나고 있다. 

1904년 2월 9일 일본은 인천항에 정박해 있던 러시아 군함을 격침시키고 다음 날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러일전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은 2월 23일 한국과 한일의정서를 체결함으로써 군사 요지를 수용할 수 있게 됐다. 일본군은 전쟁에 필요한 고급 정보로 한반도와 만주지방의 기상관측과 예보를 필요로 했다. 그래서 일본중앙기상대 안에 한국과 만주 등지에 임시관측소를 설치하도록 하고 3월 7일부터 제1임시관측소를 부산에, 제2임시관측소를 팔구포(八口浦)에, 제3임시관측소를 인천에, 제4임시관측소를 용암포에, 제5임시관측소를 원산에 설치했다. 나아가 만주지역으로까지 확대했다. 러시아 군함을 감시해야 했고, 일본 해군의 작전에 도움이 되는 기상관측을 하려다 보니 한반도에서의 임시관측소는 모두 해안가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인천에서의 관측업무는 4월 10일 일본인 거류지 제41호 민가(民家)를 빌려서 쓰면서 시작됐다. 각 관측소에서는 매일 6회 기상관측이 있었고, 일기예보는 매일 1회 16시에 발표했으며, 거기에 상응하는 신호기를 게양했다. 인천에는 임시관측소 유일의 전임기사를 소장으로 임명해서 전체 임시관측소를 관리했다. 1905년 1월 1일 준공된 인천의 일본기상대 제3임시관측소는 1907년 4월 1일 통감부관측소로 됐다가 1908년 4월 1일 대한제국 농상공부관측소로 됐으며 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 통신국 소속의 조선총독부관측소로 변했다. 

그에 따라 나머지 임시관측소는 통감부관측소의 지소인 측후소가 됐다. 한반도의 모든 기상정보는 인천관측소로 모여 일괄 관리되며 일기예보도 인천에서 발표됐고, 일본 본토나 타이완과 기상 정보를 교환할 경우 인천을 통해서만 이뤄졌다. 1929년 1월 1일 청사가 새롭게 준공되고, 그해 9월 천문관측을 위해 직경 15㎝의 천체망원경을 설치했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망원경에 의한 천문관측의 시작이었다. 1939년 동경천문대로부터 인천에 있는 조선총독부 기상대에 타전된 내용에는 ‘혜성’에 대한 관측 자료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때 혜성의 위치 측정을 위해 사용된 것이 이 굴절망원경이었다. 당시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천문대와 동경천문대 그리고 조선총독부 기상대가 상호 정보를 교환하고 있었다.

1930년대 후반부터 인천의 관측소를 수도 서울로 이전하자는 논의가 자주 있었지만 1939년 7월 1일 조선총독부기상대로 명칭이 바뀌었을 뿐이었다. 광복 후 1945년 10월 2일 미군정청 학무국 산하의 중앙관상대, 1949년 8월 18일 국립중앙관상대 등으로 바뀌었다. 1953년 11월 국립중앙관상대가 서울로 이전됨에 따라 인천측후소가 됐으며 1992년 3월 대전지방기상청 인천기상대로 개칭됐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비록 기상 관측의 중심에서 멀어져 가긴 했지만, 인천기상대는 천안함 침몰 당시 인공지진을 감지했던 곳이기도 하다. 바다와 공항을 아우르는 인천 지역의 지리적 공간적 역할을 생각할 때 그 중요성만큼은 예전과 다름이 없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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