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미군기지를 역사의 교과서로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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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미군기지를 역사의 교과서로 삼자
  • 기호일보
  • 승인 2019.12.13
  •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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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부평 미군기지가 해방 75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다. 일제강점기에 능욕당한 세월까지 더하면 80년을 훌쩍 넘는 금단의 시간이 흘렀다. 정부는 지난 11일 평택에 소재한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에서 미국과 가진 ‘제200차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를 통해 반환이 미뤄졌던 부평미군기지를 포함한 전국 4곳의 폐쇄된 미군기지를 즉시 돌려받기로 합의했다. 늦은 감이 있다. 

 이들 기지는 미군이 떠난 지 꽤 오래돼 군사적 필요성이 없어진 우리 땅임에도 그동안 미국으로부터 돌려받지 못했다. 반환이 미뤄졌던 가장 큰 이유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는 부대 내 환경정화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를 두고 한미 양측이 공방을 벌여 왔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사용하면서 더럽힌 땅은 당연히 깨끗이 정화한 후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함에도 미국은 그러지 않았다. 대국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 미군기지 반환도 결국은 우리가 ‘선(先) 반환 후(後) 협상’이란 큰 양보를 통해 얻어낸 결과다. 당장 부평미군기지의 오염된 토양을 정화하는 데만 773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상 미국이 거부하면 그만이다. 결국에는 우리가 부담해야 할 몫이 된 셈이다. 

 어찌됐든 시는 전체 부지 중 야구장이 있는 1단계 B구역의 철책 제거와 환경조사를 거쳐 이르면 내년 초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데 이어 2단계 구역 중 미군에 빵을 공급하기 위해 가동 중인 제빵공장도 내년 8월 개방하는 등 2022년까지 부평미군기지를 개방한다는 계획이다. 시민으로서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민족의 아픔을 가진 부평미군기지가 역사의 교과서가 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국으로의 확전을 획책한 일제는 1939년 이곳에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규모의 조병창(造兵廠)을 설치하고 주민들을 강제 노역의 도구로 삼았다. 해방된 이후에도 우리 땅이 되지 못하고 남한에 주둔한 미군기지로 바뀐 후 이제껏 인천시민이 들어갈 수 없는 금단이 땅이 됐다. 그렇게 8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찾게 된 부평미군기지는 이제 인천시민의 사랑 속에 역사의 교과서로, 그리고 미래를 제시한 비전의 장소로 거듭나야 한다. 그게 역사가 인천시민에게 요구하는 과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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