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부터 벌어진 간척에 제모습 잃은 하천 ‘부활 기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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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부터 벌어진 간척에 제모습 잃은 하천 ‘부활 기지개’
8. 강화, 앞바다 매립의 시작
  • 홍봄 기자
  • 승인 2019.12.13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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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석수문.
오늘날의 석수문.

지금의 강화도는 주섬인 강화도를 비롯해 석모도·교동도 등 큰 섬을 중심으로 1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뤄져 있다. 강화도는 한강·임진강·예성강이 합류하는 하구에 위치하며, 세 개의 강이 합류한 물줄기 중 한 갈래는 강화도 북쪽을 지나 황해로 흘러들고, 북쪽 대안에는 개풍군과 연백군이 위치해 있다. 또 한 줄기는 강화도와 김포시 사이를 남류해 염하(鹽河)를 이룬다.

이 염하는 과거 삼남지방의 세곡을 수운을 통해 서울로 운반하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밀물과 썰물 때 조류가 대단히 빨라 선박 통행에 많은 지장을 줬다. 마니산(摩尼山, 469m)과 혈구산(穴口山, 466m)·진강산(鎭江山, 443m)·고려산(高麗山, 436m) 등 300∼400m 내외의 산지들이 산재해 있다.

이 산지 사이로는 황경내·천하골내·용목내 등 소하천이 흐르고, 바다로 흘러드는 하구에는 해안의 충적지가 형성돼 농경지를 이루고 있다. 경기만의 해안은 조석간만의 차가 심하며, 해저지형이 비교적 평탄하고 갯벌의 발달이 탁월하다.

강화지역은 위 세 하천의 하구에 위치해 있어 이들 하천이 운반하는 막대한 양의 토사가 강화수역에 퇴적돼 큰 섬들 주위에 넓은 갯벌을 발달시켰다. 이러한 갯벌들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간척돼 인공 평야가 됐다. 또한 간척에 의해 복잡했던 섬들은 연륙으로 석모도와 같이 큰 섬으로 변했다.

동락천 복개사업.
동락천 복개사업.

강화도의 해안가는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으로 들쭉날쭉이 심했다. 지금의 매끄러운 강화도 지도가 만들어진 것은 오랜 기간의 간척과 갯벌 매립의 결과물이다.

과거 강화 본섬의 3분의 1은 바다였고, 석모도와 교동도도 과거에는 여러 개의 섬으로 이뤄졌었다. 5천 년 전 상고시대 단군(檀君) 할아버지가 쌓았다고 전해지는 화도면에 위치한 마니산 참성단(사적 136호, 1964년 7월 11일 지정)은 1천 년 전까지는 강화에서 바다로 건너는 섬이었다고 한다. 

강화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찍, 가장 체계적으로 대규모 간척사업이 시작된 곳이다. 1232년 몽고의 침입을 피해 고려 조정은 강화로 천도하고 40여 년 동안 몽고에 항전했다. 강화도는 농토가 적어 대부분의 주민들은 농업 외에 어염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곳이었다. 강화 천도 후 강화 인구는 10만여 명으로 급증했고, 강화에 몰려온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주거시설과 식량을 공급하기 위한 농경시설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해안 저습지에 간척이 시작됐다. 

13세기부터 강화도 지역에 본격적인 간척사업이 추진돼 제포와 와포에 둑을 쌓아 좌둔전을, 이포와 조포를 막아 우둔전을 만들었다. 고려말에는 망월포에 만리장성 둑을 쌓아 간척을 했다. 강화도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조선시대 숙종 때도 간척지가 본격적으로 조성됐다. 오랫동안 진행돼 온 간척사업의 결과, 강화도 주변의 많던 섬들이 모두 사라지고 현재의 모습으로 변했다. 강화에서는 저수지나 제방, 인공수로가 많이 관찰된다. 이는 작은 개울의 물도 바다로 흘려보내지 않고 간척된 농지에 농업용수로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서다.

강화에는 숭릉천·다송천·덕하천·교산천·삼거천·내가천·삼흥천·인산천·덕교천·길정천·온수천·삼동암천·동락천·선행천 등 지방하천 14개와 소하천들이 있다. 그동안 인천 하천 살리기는 도심하천 위주로 진행돼 왔었다. 민관 협력에 따른 인천 하천 살리기 활동이 열매를 맺어 강화의 하천도 생태문화하천으로 복원하겠다고 인천시가 지난 미래이음계획에 발표했다. 

동락천(東洛川)은 연장 3.6㎞(강화읍 관청리∼갑곶리), 유로 연장 7.5㎞, 유역면적 19.2㎢의 강화 도심을 흐르는 하천이다. 서쪽 고려산에서 발원해 국화저수지를 거쳐 도심을 관통해 동쪽으로 흐르면서 갑곶강(염하)으로 빠져나갔다. ‘동쪽 낙양의 내’라는 뜻을 가진 동락천은 온갖 물화와 사람이 모이는 저잣거리로 강화의 상징적 공간이었으나 도심을 흐르는 공간은 1980년대 초께 복개됐다.

동락천이 흐르는 곳 주변에는 국화리의 국화저수지와 남산 부근의 선행지(술감지) 등 저수지와 강화동종(보물 11-8호) 등 9개의 국가지정문화재와 5개의 지방문화재가 있다. 특히 동락천은 강화산성인 내성과 연결돼 흐르는데, 동락천에 위치한 석수문은 수원시에 위치한 수원천과 화홍문에 비교해 그 아름다움과 역사·문화적인 면에서 못지않다. 

강화 동락천 옛 모습.
강화 동락천 옛 모습.

동락천은 상류에 고려산과 국화저수지로부터 풍부한 수원이 위치하고, 다양한 수서생물들이 서식하는 등 생태적으로 우수해 학생들과 강화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생태와 문화, 역사가 흐르는 하천으로 많은 매력을 제공할 수 있다.

석수문은 조선 숙종 27년에 강화산성 상수문과 하수문 2개 수문으로 축조됐으나 1924년 갑자년 대홍수로 인해 모두 붕괴됐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27년 유실된 석재로 갑곶리에 이축했다가 1977년 강화군 국방유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관청리 현 하수문 자리로 옮겨 복원됐으며, 1975년 9월 15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7호로 지정됐다.

인천시 수질환경과는 현재 내가천 등 10개 하천에 대한 하천기본계획 수립 용역 중에 있다. 하천법 제25조 및 동법 시행령 제24조 규정에 의거 하천의 관리, 이용, 보전, 개발, 수질보전, 치수경제, 하천환경, 수변경관 및 생태계 보전계획에 관련된 사항을 종합적으로 조사·분석한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하천기본계획을 통해 수자원 종합개발 지침을 마련하고, 도시화로 인한 하도 및 수문·수리 특성 변화와 하천의 관리·운영 미비점을 보완해 강화에 있는 하천들까지 하천 살리기를 확대할 계획이다. 

도움말=최혜자 인천하천살리기 추진단 사무국장

정리=홍봄 기자 spring@kihoilbo.co.kr

사진=<강화군 제공>

<인천하천살리기추진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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