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톱(沙洲)에 의해 연결된 두 개의 작은 섬이 마치 여덟 팔(八)자로 뻗어 내린 꼬리와 같은 형상을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팔미도(八尾島). 이곳은 군사보호지역으로 2008년까지 일반인의 접근을 허용치 않은 그야말로 ‘은둔의 섬’이었다.
 

무인도인 팔미도는 인천에서 직선거리로 약 9㎞ 떨어져 걸어서 30분이면 섬 전체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아담한 면적을 가졌다. 또 석양 아래 돛단배들이 팔미도를 휘돌아가는 아름다운 풍경을 ‘팔미귀선(八尾歸船)’이라 부르며 예로부터 인천지역 팔경의 하나로 꼽혔다.

단출하지만 깨끗한 정취를 가진 이 섬은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 ‘자유’를 지켜 낸 보석과도 같은 역사를 품고 있기도 하다.

‘대한민국 지방신문협의회 사장단’은 지난 13일 오전 인천관광공사 초청 팸투어 일환으로 팔미도를 방문했다. 사장단은 황금잉어를 등에 업은 형상의 ‘금어호(金魚號)’를 타고 팔미도로 이동했다.

선창을 떠나 팔미도 방향으로 서서히 뱃머리를 돌린 금어호는 연안부두와 석탄부두, 역무선 방파제, 연오랑 등대를 곁에 두고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탁 트인 바다로 나아가자 사장단은 너나 할 것 없이 연방 사진을 찍어댔다. 연안부두에서 뱃길로 약 50분.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도착한 팔미도는 오랜 시간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해송이 울창한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고운 금빛 백사장과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삐죽삐죽 튀어나온 바위들은 파도 소리와 함께 어우려졌다. 멀리 보이는 인천대교는 서해바다를 가로질러 내달리고 있었고, 다리 아래로 인천 연안을 오가는 다양한 크기의 선박들이 드나들어 장관을 연출했다.

사장단은 나무 계단을 통해 전망대로 향했다. 이들은 ‘천년의 빛 광장’과 ‘옛 등대 사무실’을 차례로 관람하며 단체사진을 촬영했다.

15분가량의 경사로를 더 올라 ‘팔미도 등대’에 도착했다. 2003년 건립 100주년을 끝으로 퇴역한 팔미도 옛 등대(시 문화재 제40호) 뒤로 첨단 위성항법시스템을 갖춘 새로운 등대가 자리잡고 있었다. 해발 고도 58m 섬 정상부에 세워진 팔미도 옛 등대는 1903년 6월을 시작으로 한 세기가량 인천 앞바다를 비춰 왔다.

특히 팔미도와 옛 등대는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켈로(KLO)부대의 ‘등대점등작전’의 거점이 된 곳이다.

등대를 둘러본 후 전망대에 오른 사장단은 망원경으로 인천 앞바다의 비경을 관람했으며, ‘소나무 삼림욕장 둘레길’을 걸어보기도 했다.

충북일보 강태억(64)사장은 "인천상륙작전이 펼쳐졌던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를 둘러보고 나니 감회가 새롭다"며 "아담하지만 수려한 자연경관과 함께 역사의 현장을 체험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방문단에 참여한 한라일보 이용곤(60)사장은 "역사를 기록해 나간다는 언론의 소명을 비춰 볼 때 언론사 사장들이 역사의 현장인 팔미도를 방문했다는 사실이 뜻깊다"며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언론인의 일원으로서 이번 방문은 좋은 계기가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우제성 기자 wjs@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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