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매’라니요?
상태바
‘사랑의 매’라니요?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전 인천 남부교육청 교육장
  • 기호일보
  • 승인 2019.12.17
  • 10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

‘아동학대 예방의 날’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도 등장하지 않는 이날을 나 역시 며칠 지나서 기사를 보고서야 알게 됐다. 

아동학대 예방의 날? 50여 가지나 되는 여러 기념일이 있지만 참 별난 날도 다 있다는 생각으로 기사를 찾아보니 2000년 11월 19일 여성과 아동을 위한 비정부 국제기구인 ‘WWSF(여성 세계정상기금)’가 전 세계에 아동학대 문제를 부각하고, 예방 프로그램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처음으로 제정했다고 한다. 세계 각국의 정부와 시민단체는 매년 아동학대 예방의 날 전후로 아동학대 예방 주간을 정하고 관련 행사를 진행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참 뒤인 2007년부터 이 행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2012년 ‘아동복지법’을 개정하면서 매년 11월 19일을 아동학대 예방의 날로 지정했고, 아동학대 예방의 날부터 1주일을 아동학대 예방 주간으로 명시해 놓았다. 아동의 건강한 성장을 도모하고, 범국민적으로 아동학대 예방과 방지에 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아동학대 예방의 날 취지에 맞는 행사와 홍보를 해야 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그러나 아동학대 예방의 날이나 예방 주간조차도 매년 유야무야(有耶無耶) 보낼 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아동학대가 줄어들기는커녕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2014년 1만여 건이던 아동학대 건수가 지난해 2만4천 건까지 큰 폭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학대 피해 신고 건수가 하루 평균 50건, 매달 학대로 인한 사망 아동만 2.6명이라고도 한다. 

특히 10건 중 8건은 친부모에 의한 학대라니 더욱 놀랍다. 더구나 전문가들에 의하면 사회 전반적으로 아동학대에 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신고 건수가 증가하고 있긴 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하면 아직 신고되지 않은 아동학대 사례도 많을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2015 전국아동학대 현황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아동학대 피해 아동 발견율은 1.32%에 불과하다고 한다. 아동 1천 명당 학대로부터 보호받는 아동의 수가 1명 내외인 셈이다. 미국이나 호주의 발견율 8~9%에 비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신고되지 않은 아동학대 사례가 엄청날 것이라는 추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우리 정부에 가정과 학교 및 아동 관련 모든 기관에서 체벌을 명백히 금지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비폭력 훈육을 장려할 것을 여러 차례 권고한 바가 있다. 게다가 과거와 달리 부모라 하더라도 함부로 자녀에게 과도한 체벌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도 조성돼 가고 있는 과정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최근 정부는 부모의 아이에 대한 징계권을 규정한 민법 제915조의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부모는 자녀를 보호, 교양할 권리와 의무가 있고, 자녀를 위해서는 적절한 체벌도 할 수 있다고 여겨온 것이 오래된 사회적 통례(通例)였다. 때려서 아이를 가르쳐야 한다는 일부 부모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친권자의 징계권 범위에서 체벌을 제외하고자 하는 것은 매우 적절한 일이다. 

아동학대 혐의로 법정에 서는 부모들은 으레 ‘아이를 훈육하려던 것뿐’이라고 항변하고 핑계를 대지만 앞으로는 그런 항변이 법원에서 절대로 통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게 정부의 법 개정 취지인 셈이다. 그러나 반발 또한 적지 않은 것 같다. "아이가 말썽을 피우거나 사고를 치면 부모가 당연히 지도할 책임이 있는데 어떻게 훈계를 하라는 것인가?" 또는 "가정에서의 자녀 훈육까지 정부가 왜 개입하는가?"라며 반발한다. 예로부터 ‘귀여운 자식에겐 매를 때리고 미운 자식에겐 밥을 한 그릇 더 주라’고 했다며 이른바 ‘사랑의 매’라는 주장을 한다. 인격이나 자존심에 손상을 주지 않을 만큼의 체벌은 아이의 바른 성장과 장래를 위해서도 매우 효과가 있다며 ‘사랑의 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래전에 유명배우 김혜자 씨가 아프리카의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봉사 활동을 하면서 고통받는 아이들을 직접 보고 느낀 것을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낸 일이 있다. 모든 아이는 어른이 지켜줘야 할 소중한 존재다. 아이는 누구나 행복하고 안전하게 자랄 권리가 있다. 아이는 장애 유무나 부모의 성별, 나이, 종교, 사회, 경제적 신분 등으로 어떠한 차별을 받아서도 안 된다. 앞으로는 ‘사랑의 매’라는 핑계로 아이들을 학대하는 일을 그 어떤 경우든 사회가 용인(容認)하지 말아야 한다.

기호일보, KIHOILBO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