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흥구 인천문인협회이사
황흥구 인천문인협회이사

일본 이시카와현(石川縣) 노토마치(能登町) 초청으로 지난 11월 17일부터 3박 4일간 과천에 있는 ‘한뫼국악단’과 함께 일본을 다녀왔다. 노토마치는 일본열도 중간 북단 노토반도에 위치한 우리 군(郡)과 같은 도시이다. 인천에서 2시간여 만에 고마츠(小松)공항에 내리니, 마침 이 비행기는 한일 갈등의 여파로 약 두 달간 폐쇄됐다가 오늘 처음 재개하게 됐다. 첫 승객으로 한국에서 문화사절단이 들어오니 방송, 신문사에서 열띤 취재경쟁과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우리는 "문화예술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정치가 장벽을 만들면 예술은 그 벽을 허물고 문을 만들어 소통을 가능케 함으로써 이럴 때일수록 양국 간에 교류가 활성화해야 한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번 공연은 ‘노토마치 문화협회 창립 15주년 기념’으로 특별히 초청한 것이다. 공연은 경사스러운 날에 추는 화관무와 부채춤을 엮은 ‘축연무’와 이어서 정, 중, 동의 미가 곁들인 살풀이춤과 진도북춤, 장구춤, 한량무 그리고 창작무용으로 한 떨기 매화를 그리는 고고한 독무(獨舞)가 무대를 휘저으며 관객을 사로잡았다. 화려한 의상과 현란한 동작의 우리 공연을 보면서 여기저기에서 감탄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역시 우리 춤은 멋, 소리, 장단의 삼합으로 춤꾼과 구경꾼이 일심동체가 되는데 일본 사람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성황리에 공연을 끝내고 저녁에는 노토마치 주관의 환영 만찬이 온천장에서 있었다. 정장(町長)을 비롯한 의장, 교육장, 의원, 공무원, 지역단체장들이 모두 나와 환영해 줬다. 최근 양국 간의 껄끄러운 현안으로 반일과 혐한이 비등한 가운데 이렇게 열렬히 환대해 주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번에 일본을 오게 된 계기는 2년 전 이 지역 분재 회원 8명이 관광차 인천에 왔었는데, 당시 공직 신분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인천의 월미도를 비롯한 강화도, 대공원, 임진각 등을 관광하는데 교통편과 식사 등 편의를 제공해 줬다. 그랬더니 올 4월에 잊지 않고 당초에는 음악협회 회원들을 초청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일본과의 관계 악화 등 여러 사정으로 갈 수 없게 됐다. 가겠다고 약속까지 해놓고 못간다는 것은 신뢰의 문제로서 이번에 급히 타지에 있는 ‘한뫼국악단’이 각자 항공편을 부담하고 오게 된 것이다. 

입국할 때의 인터뷰처럼 정치적으로는 단절되더라도 이럴 때일수록 문화예술은 물밑에서 소통과 교류가 활성화되도록 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이웃 간에 부모끼리 싸움한다고 애들마저 왕래가 끊긴다면 평생 원수가 되고 만다. 이웃집이야 이사 가면 된다지만 나라는 다른 곳으로 떠날 수는 없지 않은가? 필자가 이 지역 노토마치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순전한 문화예술로 인한 것이었다.

1998년 7월, 내가 인천시청 문화예술과 계장 재직 당시, 이 지역 축제 기간에 인천의 민속 문화에 대해 발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왜 하필 인천인가 했더니 이 지역 민속사진가가 매년 5월이면 화도진공원에서 펼쳐지는 ‘평산 소놀음굿(국가무형문화재 제90호)’에 매료돼 인천을 지목한 것이다. 다행히 발표는 성공적으로 끝나고 이 지역에서만 출토되는 불석(佛石)을 보여주며 인천에서 꼭 한 번 전시회를 열기를 원했다. 이듬해 ‘종합문화예술회관장’으로 발령받아 그 일이 생각나 인천수석연합회와 공동으로 열어 줬더니 대성황을 이뤘고, 이에 감동한 나머지 이후 수차에 걸쳐 서로 교류전을 갖기도 했다. 

또한 당시 인천 ‘월미음악제’에 이시카와현(石川縣) 가나자와(金澤)시 음악협회 합창단을 초청했더니 답례로 이듬해 인천시립교향악단을 초청했다. 내가 예산이 없다 하자 파격적으로 통상 체재비만을 부담하는 관례를 깨고 비행기 편까지 모두 부담하며 초청해 주기도 했다. 그 이후 그쪽에서 인천에 오면 필자가 주관이 돼 인천을 보여주고, 다음은 그쪽에서 초청하면서 20여 년 넘게 교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무엇보다 서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한일 갈등은 극단적 감정대립과 자존심으로 수그러들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이럴 때일수록 문화예술은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불쏘시개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 시에서도 일본과의 관계가 좋지 않다고 해서 지원을 끊거나 교류를 중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공연도 당국의 협조와 지원 없이 오직  일본 내 혐한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국위선양에 앞장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찾은 것이다. 이번 공연을 통해 꽉 막힌 일본과의 관계가 다소나마 숨통을 트이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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