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투(#MeToo·'나도 당했다') 파문부터 최근 가수 김건모의 성폭행 의혹까지, 고발성 보도라는 좋은 취지와 별개로 조절되지 않은 수위의 기사들이 독자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자살보도 준칙처럼 '성폭행·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이 있지만 유명무실하고, 현실적으로 제재할 방안도 없다는 게 더 문제점으로 꼽힌다.

지난해 연예계 미투 파문에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 행태는 배우 고(故) 조민기 사건 당시 절정에 달했다.

 

일부 연예매체는 조민기가 학생들에게 소셜미디어로 보낸 성희롱 메시지와 사진을 살짝만 재가공한 채 그대로 기사 형식으로 내보냈다.

당시 피해자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오는 상황에서 연예매체들을 중심으로 후속보도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이긴 했지만 해당 기사는 선을 한참 넘었다는 지적이 일었다.

최근 김건모 사태도 점입가경이다.

유튜브 '가로세로연구소'를 통해 폭로된 김건모 성폭행 등 의혹은 갈수록 범죄 여부와 고발 그 자체보다 자극적인 내용에 초점이 맞춰지는 분위기다.

유튜브라는 플랫폼 특성상 가로세로연구소야 '필터링' 없이 고발한다고 하더라도 미성년자까지 자유롭게 볼 수 있는 포털사이트에 기사를 올리는 언론사들이 보기에도 민망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지어는 제목에까지 성폭력이 연상되는 문구를 그대로 옮겨놓은 경우도 적지 않다.

성폭력·성희롱 사건 보도 공감 기준 및 실천 요강에는 "언론은 성폭력·성희롱 사건의 가해 방법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을 지양해야 하고, 특히 피해자를 '성적 행위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할 수 있는 선정적 묘사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돼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관련 기사에는 "기사도 필터링해야 할 것 같다. 애들이 볼까 봐 무섭다"((네이버 아이디 'jung****'), "김건모도 문제지만 애들도 보는 곳에 제목을 자극적으로 뽑아대는 기자도 문제"('anil****') 같은 비판 댓글이 잇따랐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18일 "성폭행, 성추행 정도만 표현하면 되지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했다고까지 쓸 필요는 없다. 범죄 여부가 핵심이지, 어떤 형태로 이뤄졌는지가 사건 실체를 파악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면 굳이 기사에 쓸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인터넷상에서 더 많은 '클릭'을 유도해 돈을 벌기 위한 것인데, 저널리즘 기본 원칙에도 어긋난다"면서도 "법으로 처벌하기는 어렵다. 언론 자유가 침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율심의를 해야 하는데, 언론사 자체적으로 한계가 있다면 기자협회 등에서 나서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자율적인 심의와 규제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도 "인터넷을 통해 기사 양산이 되면서 '제목 장사'와 선정적 보도로 이어졌다"며 "경쟁적 보도 관행이 '누가 더 세게 쓰느냐', '누구 기사를 더 많이 보느냐'가 돼버렸다"고 짚었다. 이어 "자성의 노력과 언론 문화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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