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와 손권이 손잡고 형주의 관우를 공략했을 때, 어찌된 영문인지 성도에서의 지원도 없었고, 인근에 있던 맹달과 유봉 등도 구원군을 보내지 않았다. 결국 관우는 패해 죽고 이 소식이 성도에 전해지자 유비는 그동안 모든 정무를 제갈량에게 맡긴 것이 후회도 되고 관우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이 겹쳐 복수 일념이 됐다. 

"관우 동생이 죽었으니 과인은 결코 오늘날 혼자 살 수가 없도다. 당장 군사를 이끌고 가겠다"며 주위의 만류를 물리쳤던 것이다. 관우의 번성 공격으로 시작된 이 형주 공방전에 대한 유비의 입장은 아마도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첫째는 적어도 손권 진영이 조조와 손잡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의 착오, 정사를 제갈량에게 일임했으므로 상황에 대처하지 못한 자신의 불찰, 그리고 도원결의한 관우의 죽음이 준 울분과 슬픔 등. 

여기서 유비의 장탄식은 자책과 슬픔으로 압축해 볼 수 있다. 결국 분노의 칼끝을 세워 손권 진영으로 쳐들어갔다가 실패하고 백제성에서 최후를 맞이하기까지 유비의 마지막 수년은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을 것이다. 죽음 못지않게 괴로운 삶의 말년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다. 노인 자살률이 OECD 1위. 고통스러운 상황을 좀더 헤아려보는 배려가 있어야 하겠다.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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