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한·중·일 정상회의가 곧 열린다. 우리 대통령은 리커창 중국 총리와 일본의 아베 총리와 함께 3국 간의 협력을 강화하고 제도화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지난달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예정일을 앞두고 미국의 유력 인사들이 대거 서울로 몰려와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중국과 북한, 러시아만 기뻐한다.", "중국의 태도는 힘만 있으면 다 되고 모든 것이 옳다는 태도다." 등등 거침없이 중국을 겨냥했다. 이런 속에서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이 발표되자 이번에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찾아왔다. 그는 우리를 향해서 "신뢰할 수 있는 장기적인 협력 파트너.", "양국의 무역액이 3천 억 달러에 달하는 이익공동체"라며 우호적인 언사를 쏟아냈다. 

한국의 짜장면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강조하고 우리의 3·1 독립만세와 중국의 5·4운동이 지닌 인연까지 거론했다. 3년여 전에 사드 배치가 결정됐을 때 "한국은 양국의 신뢰 기초를 해쳤다"라며 앙앙불락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 것이다. 심지어 우리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팔을 가져다 대어 외교적 결례라는 구설수도 들었지만 사실 친근감을 높이거나 강조하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의 뜻은 미·중 패권 경쟁이 격렬해지는 가운데 우리를 중국 쪽으로 끌어들이거나 최소한 ‘중립적 입장’을 택하게 만들려는 외교였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가까운 우리에게 이제 어느 쪽에 붙느냐는 논쟁은 부질없다. 

가장 중요한 현안은 급속히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에서 특히 북한의 도발적 행위를 누그러뜨려야 한다는 점이다. 중국은 엄청나게 발전해 왔다. 그런 모습이 긍정적이고 바람직하다는 것이라는 데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요는 이렇게 번성하는 중국에게 우리 한국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다. 그들은 분명 인구나 영토, 경제력 그리고 군사력 등을 고려해볼 때 그리 우리를 대단하게 여기지 않을 터. 중국인만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가진 많은 국민이 있다. 이런 생각은 중국의 번성을 부활한 역사와 함께 연속선상에서 보는 견해와 맞닿아 있다. 

19세기까지 세계의 중심으로 자부했던 중국의 천하 질서 속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대접을 받긴 했으나 분명한 사실은 동쪽의 오랑캐로 간주됐고 우리 스스로도 국내 정치의 정통성을 가지려면 중국을 종주국으로 모시고 성의(?)를 다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가 직면한 오늘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냉전 기간 동안에 변화해 온 엄청나게 새로운 질서와 상황이다. 수천 년간 연속적으로 대륙과 한반도에서 이뤄진 연속적 관계는 수십 년의 짧은 역사의 단절에도 불구하고 모든 지난날을 뒤집을 만한 지대한 변화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핵심적인 것은 우리의 정체성이다. 

20세기 초 우리는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에 무릎을 꿇어 36년의 식민시대를 거친 후 해방과 더불어 서구 진영에 속하게 됐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대륙과 한반도는 새 국면을 맞이했다. 이념 대립 속에서 우리는 중국과 정치적 적대관계가 됐고 실제 관계가 전혀 없는 이웃이 됐다. 지리적·역사적으로 인접한 국가 사이에서 이런 절연 상황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탈식민지 국가 가운데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대표적인 나라다. 이웃 일본은 제국주의 패러다임 속에서 근대화를 이루고 결국 침략 전쟁으로 세계를 겨냥했다가 주저앉았으나 냉전 구도 속에서 경제적 번영을 이뤘다. 

지금 아베 정권은 이런 토대 위에서 우익 편향적 자세로 우리에게 무역 보복을 꾀하고 있다. 지소미아에 있어 미국을 등에 업고 우리를 압박한다. 이런 질서와 상황에서 3국의 정상들이 모였다면 적어도 우리 한국이 과거와는 큰 단절 속에서 새로운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으며, 과거 일본이 끼친 해악이나 중국의 역사 연속선상에 대해서는 성숙하고 지혜로운 대처를 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 알려줘야 한다. 중국이나 일본이 우리에게 보이는 오만한 모습은 그들 스스로에게도 유익하지 않다는 걸 확실하게 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힘 있는 나라가 약한 나라를 괴롭히는 건 분명 올바른 일이 아니려니와 반대한다"라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발언은 3국 모두에 보편적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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