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나’는 좀 알겠는데, ‘남이 아는 나’는 누구인지 듣고 부족함을 고치려는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통해 ‘더 나은 나’를 향해 가 보고자 합니다. 남은 여정에 희망이 있다면 제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스럽거나 무겁지 않은 아주 가벼운 향기를 주는 것입니다."
 

오는 30일자로 30여 년간의 공직생활을 사실상 아퀴 짓고 인생 제2막을 펼칠 정해동(60)용인 처인구청장의 ‘퇴임의 글’ 일부를 엿봤다. 나머지 주옥같은 명문들도 옮기고 싶은 욕망이 간절했지만 그의 호소력 짙은 바리톤 음성을 통해 직원들의 가슴에 고스란히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간신히 억눌렀다.

그는 퇴임을 앞두고 10여 년간 읽은 100여 권의 책과 칼럼, 강연 등에서 솎아낸 노트 한 권의 ‘지혜의 메모’를 책으로 엮어 200부를 발간했다. 밥 한 끼보다 마음의 양식 한 끼를 남기는 것이 훨씬 의미 있는 일이라는 판단에서다. 책 제목은 「삶의 트임을 위한 짧은 메모, 작은 생각」이다.

그는 189쪽 분량의 책에서 단순히 남의 글을 옮겨 적는 데 그치지 않고 틈새에 자신의 주체적인 해석도 곁들였다. 여기에 독자들의 또 다른 해석을 적을 수 있는 여백을 남겨 두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타인과 자신의 지혜를 일방통행식으로 강요하기보다는 재해석의 공간을 비워 둔 것이다. 그는 글머리에서 "비겁하지 않은 겸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꺾이지 않는 온유함이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로 책을 펴낸 취지를 압축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사모언동(思貌言動)」, 도종환 시인의 「마음의 쉼터」, 김홍신 작가의 에세이 「인생견문록」, 여명협 작가의 「제갈량평전」, 이외수 작가의 「글쓰기의 공중부양」, 이기주 작가의 「말의 품격(말과 사람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 전기보 작가의 「은퇴 5년 전에 꼭 해야 할 것들」 등등. 내로라하는 역사적 인물과 국내외 작가, 칼럼니스트, 강사들의 명언과 삶의 지혜가 정성스럽고 맛깔스럽게 차려진 백첩반상처럼 책 한 권에 갈무리돼 있다.

정 구청장은 "감사한 마음만 드리기에는 너무 염치가 없었다"며 "조그만 성의에 불과하지만 삶에 아주 작은 보탬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겸연쩍어 했다.

용인=우승오 기자 bison88@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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