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전 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김락기 전 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양력으로 또 마지막 달을 맞은 지 엊그제 같다.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으매, 무정세월이라기엔 내 게으름이 쑥스럽다.

세월, 즉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인간이 만든 가정일 수 있겠다. 시간은 늘 그 자리 그대로인데 우리네 마음이나 행동이 변할 뿐이라면 억단일까. 

그래도 12월이면 불현듯 지난달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아쉬움이 남는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회한 속에 잠긴다. 예순 중반으로 들어서는 시방, 이만큼 별 탈 없이 살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나이들수록 빠른 세월을 절감하지만 좀더 무덤덤해지련다. 금년 못한 걸 내년엔 해야지 되뇐다. 다만 몇 년 전부터 주변에 공언했던 상고사 관련 서사시조를 여태 구상만 하고 있어 면목 없다.

시골출신이라 그런지 몰라도, 서울에 살지만 산자락 곁이 좋아 지낸 지 한 세대가 넘었다.

이즈음 내 삶의 고향 터전 같은 이곳에는 버스든 전철이든 종점이나 종착역이 더러 있다.

종점은 그저 끝이라 생각하기 쉽다. 대도시 종착역사 근처에는 자연스레 토속 간이시장이 형성돼 붐빈다.

차가운 겨울 저녁, 하차한 대부분 사람들은 귀가를 재촉한다. 간혹 만취한 채 빛바랜 나무 벤치에 홀로 앉아 시름에 젖어 있는 사람이 눈에 띈다.

"뭇눈들이 버스를 내리자마자/ 각각 종종걸음으로 사라진다∥ 낡은 벤치에는 멍한 눈 하나만 앉아 있다/ 곁에는 소주병이 외로이 나뒹굴고 있다∥ ‘다시 타거라!/ 종점은 끝만이 아니라 시작이기도 하니…’∥ 주변에 가득한 허공의 눈들이/ 채근하고 있다." 나의 자유시집 「고착의 자유이동」에 실린 ‘종점’이라는 졸음 작품이다. 

그렇다. 종점은 단순히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희비와 애증이 교차하는 곳이다. 돌아보면 슬픔이나 미움에 사무친 이웃이 적지 않다. 나는 길거리 종소리의 구세군 냄비나 적십자회에 조금 기부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달랬다. 그들이 하루빨리 좋아지기를 빌면서 알량한 죄책감을 고백한다. 또한 연말이면 흔히 보도블록 교체공사나 자연공원 시멘트공사 같은 멀쩡한 근린시설에 예산을 낭비하는 모습은 밉상이다. 적폐 중 상적폐다.

한편, 종점은 기쁨과 사랑을 낳기도 한다. 약 40년 전 당시 경원선 전철 종점이었던 성북역에서 일어난 에피소드 한 토막. 군복무를 마친 어느 대학 복학생이 무슨 고시공부 같은 고학생활 중, 예기치 않게 한 여성을 만나게 됐다.

나이 20대 후반이었지만 형편상 연애에 빠질 입장이 못됐다. 허전한 마음에 저도 몰래 뭔가에 홀린 듯 두 번째 그녀를 만나던 날, 2냥짜리 전철을 타고 한강변을 따라 정처 없이 닿은 곳이 막다른 성북 역전이었다.

철은 초여름 무렵, 점심 때 지나 시장기가 져갈 즈음 인근에 죽 늘어선 포장마차형 간이식당으로 들어섰다. 국숫집이었다. 긴 나무의자 한 쪽에 나란히 앉아 시킨 것이 그나마 고급(?) 메뉴 콩국수였다. 가슴 설레던 흥분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어찌어찌하여 먹고 나서야 둘 다 간 맞추는 소금도 치지 않은 걸 알았다.

더욱이 난감한 일은 그 다음이었다. 만나서 처음 식사를 함께한 것이라 명색이 남자가 밥값을 치르는 게 그때의 관례였다. 어이하랴. 주머니가 비었다. 근근이 지내던 참이라 미처 식대를 준비하지 못했다. 황망 중 게서 1㎞가량 떨어진 아파트에 살던 절친이 떠올랐다. 잠시 그녀를 기다리게 한 뒤 공중전화로 연락한 결과, 마침 그가 받기에 5천 원을 좀 가져오라 하여, 급히 마중 나가 빌려 2인분 식대를 지불했다.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상당시간 그 식당 안에서 기다려야 했다.

결국 그날 그 동네 둔덕에 올랐다. 어느 푸나무 아래 바윗돌에 앉아 밤늦도록 무언가를 속삭였다. 별숲이 은은했다. 나란히 곁을 함께하고 앉으니 마냥 전율에 겨워 가는 시간을 잊었다. 별똥별들이 간간히 스치면서 님의 얼굴 실루엣을 그렸다. 통행금지 시각이 임박해서야 급히 일어선 것 같다.

그녀가 지금 내 아내다. 남의 귀한 따님을 만나 고생만 시킨 죄가 만만찮다. 그즈음 정인엽 감독 장미희 주연의 멜로 영화 ‘종점’은 애정의 복수극이 주제였지만, 우리의 종점은 정반대였다. 종점은 오직 끝이 아니라 다시 돌아나오는 시작이다. 하나로 끝나면서도 끝이 없는 하나,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이다. 한민족 일만 년래 조화경인 「천부경」의 마지막 구절이다. 이는 바로 그 첫 구절 ‘일시무시일’로 이어진다.

윤회다. 내년을 위하여, 나아가 내생을 위하여 올 한 해의 종점을 잘 갈무리해야겠다. 시조로 맺는다.

- 나목의 독백 -

 꽃떨기도 잎새들도
 그저 한철 꿈결 같애
 
 그 많던 벌 나비 새떼
 어디로들 떠났는지
 
 다 벗어
 호젓하거니
 함박눈에 묻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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