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사건’이 많은 나라가 되라니요? 제목이 무척 도발적이지요? 2년 이상이나 이 지면을 통해 사랑과 행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필자가 쓴 제목이라고는 믿기 어려우실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건’과 ‘사고’라는 단어의 의미를 재정립해보면 쉽게 이해를 하실 겁니다.

 이진경이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철학자 박태호 교수는 「삶을 위한 철학수업」에서 ‘사건’과 ‘사고’를 매우 흥미롭게 구분합니다. 불행한 일을 당하면 누구나 이전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일 이후의 삶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접촉사고를 당한 누군가는 그 사고를 자신의 운전습관을 고치는 계기로 삼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재수 없이 사고를 당했다며 분노와 불신감으로 살기도 합니다. 박 교수에 의하면, 사고 이후의 삶이 긍정적으로 변화될 경우에는 그 일을 ‘사건’이라고 하지만 사고 이후의 삶이 이전보다 더 나빠지는 경우에는 ‘사고’라고 부릅니다. 

 똑같은 일을 당해도 그 일을 통해 스스로를 성장하게 만드는 계기로 삼는다면 ‘사건’이고, 그것이 자신의 삶을 더욱 불행하게 만든다면 ‘사고’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사고’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차피 사고는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사고를 ‘사건’으로 생각을 바꿀 수 있어야 행복한 삶으로 이어지겠지요. 이렇게 용어를 구분해놓고 나면 ‘사건이 많은 나라’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요? 온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한 ‘세월호’ 사고를 떠올려 보면 아직도 우리는 ‘사고’로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사건’으로 인식했다면, 책임자들의 과실이 낱낱이 밝혀져야 했고, 제도 역시 바뀌었어야 하고, 비탄에 젖은 유가족들의 삶이 안정을 찾았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도 유가족들은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발생한 참사를 ‘사건’이 아닌 ‘사고’로 치부해버리는 사회에서는 하나의 비극적 사고가 언젠가는 또 다른 참사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물론 피할 수 없는 사고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어난 사고를 통해 그와 똑같은 사고를 겪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진정으로 고민할 때 비로소 ‘사고’가 ‘사건’으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질 겁니다. 그때 아름다운 전통이 만들어져 널리 확산이 되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고 복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에는 영국의 ‘버큰헤이드호’ 침몰 사고에 대한 일화가 실려 있습니다. 1852년 영국 해군의 자랑인 버큰헤이드호가 사병과 가족 모두 합쳐 630명을 태우고 남아프리카를 항해하던 중에 큰 바위와 충돌해 침몰했습니다. 

 그때는 새벽 2시였고, 그 지역은 식인상어들이 우글거리는 곳이었습니다. 순간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구명정은 단 3척뿐이었는데, 1척당 60명밖에 타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살아날 수 있는 사람은 180명뿐이었던 겁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함장인 시드니 세튼 대령은 병사들을 갑판 위에 집결시키고 준엄한 명령을 내립니다. 부동자세로 서 있으라고. 그리고 구명정에는 부녀자들과 아이들을 태우라고 말입니다. 구명정에 오른 가족들이 서서히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 갑판 위의 병사들! 이제 다시는 보지 못할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을 향해 세상에서 가장 경건한 거수경례를 올리고 있는 병사들! 그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겁니다. 이렇게 436명이 장렬히 수장됐습니다. 물론 사령관 세튼 대령도 병사들과 함께했습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해지자 그 사고 이후의 영국인들은 위기 시에는 "버큰헤이드호를 기억해!"라고 서로에게 외친답니다. 즉 여자와 어린이부터 먼저 구하라는 아름다운 전통이 만들어진 겁니다. 이것이 불행으로 끝날 뻔한 ‘사고’를 아름다운 ‘사건’으로 승화시킨 아름다운 예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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