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익<태영 이엔씨 고문/행정학박사>
이상익<태영 이엔씨 고문/행정학박사>

최근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 복지정책과 무상지원 정책과 관련해 소위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꾸준히 주창되고 있는 정치적 어젠다가 기본소득이다. 현재 2016년 성남시의 청년배당과 무상교복, 2019년 중앙정부의 보편적 아동수당, 서울시 청년기본수당,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과 농민기본소득 등이 유사 기본소득 형태로 시행되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기본소득의 기본 개념은 중앙·지방정부가 모든 개인에게 자산조사나 일에 대한 요구 없이 무조건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적당한 금액의 현금을 말한다. 노동과 소득을 분리함으로써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며, 실질적인 자유를 영위할 수 있는 일종의 기본권이라는데 방점을 두고 있다. 이유는 세계 각국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이 부와 소득의 심각한 불평등과 불의를 낳고 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으로 기술이 노동시장을 쉽게 대체하면서 일자리 감소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그 결과 불안정하고(precarious) 불안전한 노동, 실질임금 감소, 만성적인 채무 등에 직면한 수많은 노동자(proletariat) 즉 프레카리아트(precariat)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를 처음 고안한 인물로 1516년 토머스 모어 경을 꼽는 이들이 많다. 그는 ‘유토피아(Utopia)’ 섬에 관한 픽션을 통해 기본소득이 있는 사회를 최초로 그려낸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미국에서는 1795년 저서 「토지정의(Agrarian Justice)」에서 토지배당 기본소득을 제안한 미국 독립혁명 사상가 토머스 페인을 시초로 보고 있다. 1960~1970년대에는 노벨경제학자 제임스 토빈의 시민보조금(demogrant), 밀튼 프리드먼과 조지 스티글러의 마이너스 소득세 주장에 힘입어 큰 호응을 얻었다. 이를 정치운동으로 확대한 인물이 마틴 루터 킹 목사다.

 실제로 미국 알래스카주는 1982년부터 매년 한 차례씩 알래스카 영구기금배당제도를 통해 모든 주민들에게 1인당 1천600달러를 지급하고 있다. 또한 핀란드 정부는 2017∼2018년 실업자 2천 명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나라에서 많은 논란에 직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반대론자들의 주요 논지로는 첫째, 기본소득은 너무 이상적이며 국가가 재정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둘째, 완전고용 정책에서 벗어나 일자리를 줄이고 임금을 낮추며 인플레이션을 초래한다. 셋째, 빈민만이 아니라 부자에게 공짜로 돈을 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넷째, 해외 이민 유입을 유인한다. 다섯째, 선거를 앞둔 정부와 여당에 의해 조작될 수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서울에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주최한 2019년 한국 기본소득 포럼에 참석한 적이 있다. 우리 사회의 현실과 기본소득이라는 주제로 이틀간에 걸쳐 기본소득의 재원, 플랫자본주의, 지방자치단체 사례, 2020년 총선 등 8개 세션으로 나눠 진행됐다. 적지 않은 학자와 전문가, 시민단체, 정치계, 언론계에서 폭넓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편으론 선결돼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는 점도 느꼈다. 우선 기본소득 개념의 모호성, 추진 주체의 불명확성이다. 또한 정치 이념적 측면에서 당위성과 필요성만이 다소 지나치게 부각된 면이 있다. 기존의 사회복지제도, 조세체계, 소요예산 분석 및 재원 확보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 등이 미흡하다. 아울러 국민의 동의와 정치적 합의 여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경제학자인 엘버트 허시먼의 ‘반동의 수사법’에 의하면 어떠한 사회정책의 아이디어도 초기에는 불가능성(미작동), 왜곡(부작용), 위험성이라는 근거로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아이디어가 올바른 것으로 판명되면 비판은 사라지고 대신 필연성과 상식이라는 수사법이 자리를 잡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형 기본소득이 소득분배의 새로운 패러다임, 유토피아로 가는 초석이 될 지 아니면 복지 포퓰리즘으로 그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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