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사랑하면 아무리 추한 것도 아름답게 보입니다. 아기가 똥 싸놓은 것도 엄마 눈에는 그저 예쁠 뿐입니다. 누군가가 아름답게 보인다면 그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꽃이 아름답게 보이고 구름이 곱게 보이는 순간 우리는 그것들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고, 그때 아기와 엄마, 꽃과 나, 구름과 나는 하나가 되는 겁니다. 이렇게 사랑은 서로 다른 두 개를 하나로 엮어줍니다. 사랑 중의 가장 위대한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일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도 감사하고 너무도 미안해서 말입니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3」에 나오는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밤이었다. 여덟 살 먹은 아들 자카리야와 나는 재밌는 프로가 없나 하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나는 무심코 ‘우와, 여기서 미인대회를 하네’ "라고 말했다. 어린 아들은 내게 미인대회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미인대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뽑는 대회를 말하는 거야." 그러자 아들은 진지하게 나를 보더니 "그럼 엄마는 왜 저기에 안 나갔어?"라고 말해 나를 감격시켰다." 그렇습니다. 아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 바로 엄마였습니다.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엄마의 품에 안긴 채로 컸습니다. 그랬기에 엄마의 사랑을 어떤 의심도 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주는 사랑이었으니까요. 

2017년 12월 말이었습니다. 채널을 돌리다가 어느 TV뉴스를 보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78세 노모가 자식들에게 남긴 유서를 소개한 뉴스였습니다. 암 말기 판정을 받고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기기 직전에 자녀들 몰래 작성한 유서라고 합니다. ‘자네들이 내 자식이었음이 고마웠네’라는 제목의 짧은 유서 속에 담긴 노모의 자식사랑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애틋하고 숙연했습니다. 유서가 공개된 노모의 장례식장은 순식간에 눈물바다로 변했습니다.

"자네들이 나를 돌보아줌이 고마웠네. 자네들이 세상에 태어나 나를 어미라 불러주고, 젖 물려 배부르면 나를 바라본 눈길에 참 행복했다네. 지아비 잃어 세상 무너져, 험한 세상 속을 버틸 수 있게 해줌도 자네들이었네. 병들어 하느님 부르실 때, 곱게 갈 수 있게 곁에 있어줘서 참말로 고맙네. 자네들이 있어서 잘 살았네. 자네들이 있어서 열심히 살았네. 딸아이야, 맏며느리 맏딸노릇 버거웠지? 큰애야, 맏이노릇 하느라 힘들었지? 둘째야, 일찍 어미 곁 떠나 홀로 서느라 힘들었지? 막내야, 어미젖이 시원치 않음에도 공부하느라 힘들었지? 고맙다. 사랑한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자."

잠시 제가 저 노모라고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이제 호스피스병동으로 가야 합니다. 그곳에 가면 죽는 일만 남았습니다. 사랑하는 자식들도 더 이상 보지 못할 그날만이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어떤 보물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피붙이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그날 말입니다. 

오십 년 이상을 아이들과 함께 살아온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배고팠던 시절, 아이들 입에 넣어줄 것이 없어 울기도 많이 울었던 나날들, 아버지 없이 자라서인지 늘 형제간에 크고 작은 다툼들이 있었고, 학교선생님의 호출은 잊을 만하면 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썽 따위는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그저 내 곁에 있는 그들이 너무도 고마우니까요. 내 기억 속에는 그들과의 기뻤던 추억만으로 가득합니다. 눈물을 훔치며 마지막 유언을 씁니다. 사랑한다고. 내 자식이어서 고맙다고. 사랑할 때는 내가 못해준 것만 생각나지만, 미워하면 내가 잘해준 것만 생각납니다. 그래서 사랑할 때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잘해줬어도 부족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도 내가 못해줬는데도 "내 자식으로 있어줘서 고맙다"라고 말하는 어미의 마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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