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요./ 갱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김상용 시인의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로 새해 인사를 드린다. 가식과 허울을 벗고 전원에서 즐기는 목가적 삶의 여유와 아름다움을 이보다 더 훌륭히 표현한 시는 드물 것이다. 2020년에 소개하는 첫 영화 ‘콜드 워(Cold War)도 이 시와 같은 작품이다. 겉치레와 온갖 화려한 수식을 걷어낸 오롯한 알맹이의 감정으로 교감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냉전’이라는 제목처럼 이 영화는 1949년부터 1964년까지 폴란드의 냉전시기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작품이지만 사실 이념적인 내용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한시도 떨어져서 지낼 수 없는 사랑하는 남녀의 진실한 감정에 집중하는 영화다.

1949년 공산주의 체제 하의 폴란드. 줄라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민속음악단 오디션을 치른다. 음악감독 빅토르는 줄라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녀를 발탁한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을 음악을 매개로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줄라는 사상을 의심받는 빅토르를 상부에 보고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고, 이를 알게 된 빅토르는 줄라에게 망명을 제안한다. 하지만 줄라는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후 파리에서 5년 만에 뜨겁게 재회한 두 사람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도시에서 민속음악이 아닌 재즈를 통해 역량을 펼친다. 함께 있으면 행복할 줄 알았지만 두 사람은 여러 가지 면에서 견해차를 보인다. 그렇게 줄라는 작별인사도 없이 빅토르를 떠나 고국으로 돌아간다. 그녀를 항상 ‘인생의 여자’라 칭해 온 빅토르는 자유를 버리고 두려움 없이 폴란드로 향한다. 

삭발된 채 수의를 입은 빅토르와 마주한 줄라. 짧은 면회였지만 둘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족했다. 1964년, 처음 만난 시골의 낡은 건물에서 가족도, 하객도, 이념도, 질투와 불신도 없이 두 사람은 조촐한 결혼식을 올린다.

영화 ‘콜드 워’는 파벨 파블리코브스키의 2018년 개봉작으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할 만큼 예술적 완성도를 인정받은 작품이다. 4:3의 화면비와 흑백 영상, 사랑이라는 고전적인 주제를 클래식하게 다룬 측면에서 극 중 배경이 되는 1950년대 영화의 향취가 난다. 

이 영화를 아름답게 만드는 형식적인 측면으로 흑백 톤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 건조하고 차가운 흑백 영상은 칠흑 같은 이념의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기도 하지만, 무채색 속에서도 살아나는 생생한 사랑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채로운 컬러의 제거는 더욱 강력하게 사랑이란 감정에 집중하게 한다. 음악의 활용 또한 영화의 또 다른 주연이라 할 만큼 훌륭하다. 특히 3번의 변주로 가슴을 적시는 노래 ‘심장’은 사랑의 숭고함을 드라마틱한 멜로디로 펼쳐내고 있다. 일면 단순한 구성과 스토리이지만 영화가 끝난 후에도 주인공이 나눈 가식 없는 사랑은 선명하게 각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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