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仰天不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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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仰天不愧>
원현린 주필<主筆>
  • 기호일보
  • 승인 2020.01.08
  •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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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현린 주필
원현린 주필

恥? ‘부끄러울 치’자(字)다. 파자(破字)하면 耳(귀 이)+心(마음 심)이다. 사람은 마음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면 얼굴 중 먼저 귀가 붉어진다. 참으로 절묘하게 만들어진 글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 많은 글자들 가운데 하필이면 서울대학교는 왜 ‘2020 달력’을 제작, 배포하면서 ‘부끄럽다’는 의미의 ‘恥’라는 글자를 한 해 달력의 표지문자로 선택했을까?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태도나 행동을 스스로 반성한다는 뜻의 ‘自省(자성)’이라는 조그마한 글씨와 함께.

달력 표지에는 ‘효제문자도(孝悌文字圖)’ 중 ‘치(恥)’라고 출처를 밝히고 다음과 같은 주(註)를 달았다. - 스스로의 행위와 생각을 돌아보라. 공자(孔子)는 "현인을 보면 그와 같이 되기를 생각하고, 그렇지 못한 자를 보면 스스로를 성찰하라(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고 하였으니, ‘자성’의 가르침이 곡진하다. 자성할 줄 모르면 상패(傷敗)에 이른다. 세종이 어찰로 자성을 요구하자 신하들이 눈물로 답하였고, 영조가 스스로 자성의 도리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까닭이다.-

문자도(文字圖)로 돼 있는 ‘恥’자를 자세히 들여다 보니 한 사람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물고기를 낚는 그림이 획(劃) 속에 그려져 있다. 옆에는 또 다른 한 사람이 풀 한 포기를 손에 쥐고 산속에 기거하는 듯한 모습과 함께.

달력은 그림에 나타난 두 사람은 ‘벼슬을 마다하고 낚시를 택한 엄광(嚴光)과 의롭게 굶어 죽은 백이숙제 (伯夷叔齊)’라고 설명하고 있다. 장을 넘기니 4월에서 ‘恥’자는 ‘청렴할 염(廉)’자를 만나 ‘廉恥’라는 두 글자로 한 단어를 이루고 있다. ‘廉’자 또한 문자도이기에 획 속의 그림을 살펴보았다. 두 노인과 말, 강물이 그려져 있다. 달력은 ‘벼슬이란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귀를 씻는 허유(許由)와 그 더러워진 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다고 한 소보(巢父)’에 관한 그림이라고 해석을 덧붙이고 있다. ‘廉恥’라는 두 글자 속에 나타난 세 사람은 하나같이 벼슬을 마다한 고사(高士)들이다. 백이숙제를 제외하고.

엄광은 유년시절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와 동문수학한 친구다. 광무제는 황제가 된 후 벼슬자리로 엄광을 불렀다. 엄광은 "정치를 도와 달라"는 말에 "자네는 요(堯)임금 당시 소보가 듣지 않아야 할 말을 들었다 하여 냇물에 귀를 씻었다는 고사를 알지 못하는가!"라며 일갈하고 일언지하 거절했다는 은사(隱士)다. 허유는 요임금으로부터 왕의 자리를 물려주겠다는 말을 듣고 ‘귀가 더럽혀졌다’며 영천(潁川)에 가서 귀를 씻고 있었다. 

때마침 소보가 소를 몰고 물을 먹이러 냇물에 다다랐다. 귀를 씻고 있는 허유에게 까닭을 물었다. 허유는 요임금이 자기에게 선양(禪讓)한다는 말을 듣고 귀가 더럽혀진 것 같아 냇가에서 귀를 씻고 있었다고 말한 다음 기산(箕山)으로 들어갔다. 허유의 말을 듣고 난 소보는 더럽혀진 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다 하고 상수로 올라가 물을 먹였다는 이야기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왔다. 세상이 아무리 혼탁해져도 교육, 종교, 법조계만큼은 맑아야 한다고. 지식인들이라 자처하는 인사들 중 과연 ‘곡학아세(曲學阿世)’라는 문구로부터 자유로운 자 그 몇이나 될까.

흔히 낯가죽이 두꺼운 사람을 가리켜 ‘철면피(鐵面皮)라고 한다. 쇠로 만든 가죽을 썼기에 예의염치를 모르고 뻔뻔스러운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철면피의 귓불이 붉어질 리 만무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말 그대로 ‘염치 없는 인사’들로 넘쳐난다. 정치판은 말할 것도 없고 지성의 집단이라 칭하는 계층에 이르기까지…. 

궁금증은 더했다. ‘正義’, ‘眞理’, ‘學習’ 등의 단어도 많은데 대학에서 왜 ‘恥’라는 단 하나의 글자를 달력 표지 장식으로 택했을까. 게다가 반성하라는 의미의 ‘自省’이라는 글자까지 더하여. 용기를 낸 대학의 뒤늦은 자기 반성인가.

맹자(孟子)는,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仰不愧於天 俯不작於人)이야말로 군자(君子)의 세가지 즐거움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시인은 노래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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