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림 칼럼니스트
김호림 칼럼니스트

우리가 일출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태양은 다시 떠올라 2020년의 새해가 됐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고도’(Godot)를 기다리듯,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선지자나 선구자를 대망한다. 간혹 이들은 소식뿐 아니라, 전인미답의 길 안내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식 전하는 자는 끝내 오지 않을 수도, 아니면 재앙을 전해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성서에는 ‘이런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증언하고 있다. 

지난 2019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거짓이 판을 치는 막장의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이 드라마의 메시지는 단순했다. "진실은 상관없다. 우리 편이니까 보호한다. 여기에서 밀리면 끝장이다"라고 들렸다. 마치 맹수가 먹잇감을 앞발로 밟은 채, 빼앗기지 않으려고 포효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처럼 이 나라는 진실존중의 가치가 사라진 거친 사회가 됐다. 흔히 이런 사회는 종교가 마땅히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 올 수 있다고 한다. 종교가 세속화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게 되면, 도덕이 무너지고, 도덕이 무너지면 정의가 실종돼 폭력이 지배하는 무질서 천지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 1996년 1월 23일 미국 캔자스주 의회 개원식에 초대돼 미국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줬던 조 라이트(Joe Wright) 목사의 기도문을 우리 모두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그 당시 그를 초대했던 주의회 의원들은 의례적인 덕담 수준의 기도를 예상했으나, 그 결과는 매우 달라 당황했다. 그리하여 심기가 뒤틀린 의원은 퇴장하고, 이런 소식을 알게 된 사람들로부터 그 목사의 교회에는 각지에서 수많은 전화가 걸려오고, ABC방송과 워싱턴포스트 신문에도 게재가 될 정도로 미국 사회를 흔들어 놓았다. 그 기도문의 일부, 즉 미국의 정치·사회적 현상을 고발한 내용은 도전이었다.

"우리는 성적 타락을 눈감아 주며, 이것을 또 다른 생활 스타일이라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소유를 빼앗으면서, ‘로또 당첨’이라고 칭한다. 시민의 게으름을 보상하며, 이것을 복지라고 일컫는다. 태아를 죽이며 이것을 (부모의) 선택이라고 부르며, 낙태를 정당화시킨다. 자녀를 훈육하고 가르치기를 소홀히 하며, 이를 그들의 자존감을 세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권력을 남용하면서 그것이 정치라고 강변한다. 공금을 횡령하면서, 필수경비라고 핑계한다. 뇌물을 제도화시켜 놓고, 이를 ‘직책의 단맛’(행정 사탕)이라고 미화시킨다. 경건치 않은 삶과 포르노로 우리의 환경을 더럽히면서, 이를 표현의 자유라고 치부한다. 조상들이 오랫동안 존중해온 가치들을 해체시키고, 이를 개화(開化)라고 둘러 댄다."

이처럼 타락하고 부패한, 1960년대 미국의 포스트 모더니즘의 정치·사회 현상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일상의 관행이 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더욱이 불행한 것은 우리에게는 이러한 선지자적인 권위로 불의와 부정과 불공정에 대한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성직자를 볼 수 없다. 또한, 국가의 장래를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집권자들에게 바른말과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며,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나라의 원로들과 깨어있는 지식인들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한편, 2020년의 이 나라의 진운(進運)은 어떠한가? 가히 누란의 위기상황으로 보인다. 미·중 문명전쟁과 북한의 비핵화 문제, 일본·중국의 동아시아 패권경쟁의 국제 정치환경은 우리에게 어느 편에 설 것인지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또한, 최근 발발된 이란과 미국의 또 다른 중동전쟁 위험은 에너지 안보위기와 세계대전을 초래할 수 있다. 국내적으로는 여야의 치열한 4월의 선거전과 정치지형 변화, 산적한 권력형 사건과 안보·정치·경제·사회·교육 등의 국가 전반 문제에 걸쳐 분열된 국론의 난제들이 위기를 안고 있다. 이러할 때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고도(Godot) 즉 선지자나 선구자를 기다려야 하나?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 그들은 오지 않는다. 

오직 냉철한 지혜만이 위기를 건널 수 있으므로, 우리 자유 시민들이 그 기쁨의 원천이 될 상황이나 조건을 만들어가면 된다. 그리하여 법치와 정의, 문명화된 정신을 구현하는 사회와 국가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시민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깨어나서 이러한 가치가 보장되고 존중되도록 힘쓰고 지켜내야 할 뿐 아니라, 시민들에게 이를 공유하고 가르치며 전해야 한다. 그리하여 시민들이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최선의 가치를 위해 행동하고 개척할 뿐 아니라,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면, 이들은 모두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유인이 될 수가 있다. 이 경우 국가는 개인의 사적 활동영역을 확보해주는 역할만을 하면 되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인류문명의 발전과 번영은 정부의 통제가 약화됐을 때 이뤄졌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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