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나는 이 지구별 한국 땅에 쥐로 태어났다. 그것도 흰쥐로다. 인간들에게 고한다. 올해는 경자년, 내 흰쥐의 띠란다. 이른바 동양인들은 간지법으로 해마다 5가지 색깔과 12마리의 동물 중에서 차례로 띠를 정했다. 요즈음은 연말 연초가 되면 역술인·풍수가·무속인들이 앞다퉈 그해 운세를 점친다. 개별 SNS가 넘쳐난다. 우리 쥐들은 흔히 재운과 풍요의 상징으로 통한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는 속담은 이미 반세기 전에 김상국의 노래로나 김희갑, 서영춘의 코미디 영화로 나왔다. 

요사이 한국카툰협회에서는 부천에서 이와 관련 카툰전을 열고 있다. 누구나 칼럼 제목으로 쓸 만큼 익숙하다. 이는 고난 속에서도 운수 터질 날을 기다리는 서민들의 희망을 나타낸다. 동물마다 고유성이 있지만, 나는 12마리 가운데 맨 앞장서서 급변하는 현실과 맞닥뜨려야 하는 입장이다. 더욱이 흰쥐이기에 대립과 충돌 속에서 변혁을 해야 하는 운명이다. 서기 2020년은 국내외적으로 혼돈과 갈등의 격랑이 몰아칠 것이다. 정치사회적으로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한국의 국회의원 총선이 기다린다. 이달 초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이 미군 공습으로 사망해 양국관계가 더 험상궂다. 

3개월 정도 남은 한국 총선거는 그야말로 안갯속이다. 서민은 안중에 없고 여야합의에 의한 국회 대의제는 사라졌다. 정치는 행방불명이다. 정치인은 없고 정치꾼만 살판친다. 서민은 알지도 못하는데, 관련 선거법은 여당 측 붕당들만의 야합 날치기 결과였다. 양극단의 흑백논리뿐이다. 보수, 진보란 미명 아래 네 편 내 편만 있다. 회색 중간지대나 양편을 넘어서는 통합 영역은 보이지 않는다. 여야의 중재자로서의 국회의장이나 전 국민의 통치자로서의 대통령은 잘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내 흰쥐 띠라고 들린다. 올 내 띠 팔자가 서리 속에서 싹트는 씨앗이라 하니, 검찰인사사태 같은 분열난국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있겠다. 

우리 흰쥐들은 그동안 실험쥐로서 인간을 위해 봉사와 희생을 다했다. 살신공양이랄까. 인간의 질병연구와 신약개발을 위해 한국에서 연간 350만 마리나 생명보시를 하고 있다. 인간유전자와 90% 이상 일치하는 신세를 타고나다 보니, 그만큼 대우는 받지 못하면서 되레 인간의 건강수명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그러고도 마지막까지 귀한 털가죽 백서피(白鼠皮)를 남긴다. 인간들은 제 편과 견해가 다르면 실상의 옳고 그름을 떠나 집단으로 지지고 볶는다. 승냥이떼나 무뇌의 좀비들이라는 진중권 비평가의 말은 적절하다. 참 한심한 자들, 화이부동의 정신이 절실하다. 

또한 우리 쥐들은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다. 얼마 전 러시아 시베리아 동토에서 4만 년 전 야생쥐 레밍 미라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는 환경변화에 적응해 오랜 기간 살아남은 우리 쥐류들의 강인함을 대변하는 사례다. 이른바 제1야당은 콩가루 집안 같다. 서로 단결하기는커녕 전 대표가 후임 대표를 수시 비방하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자기 낯짝에 침 뱉기다. 우리는 나이든 어른 쥐의 지혜를 따른다. 조선 중기 학자 고상안의  「태촌집」에 나오는 우리 쥐들의 생존전략을 어떤 이는 노서지계(老鼠之計)라 했다. 우리들은 이제 ‘마우스’란 도구가 돼 인간의 인터넷생활 필수품이 됐다. 지금 이 원고 작성에도 쓰이고 있다.  우리는 지진도 해일도 미리 알고 피한다. 서로 비방·분쟁의 이전투구에 빠져있는 인간 정치꾼들보다 예견력이 있다. 우리 쥐의 안목으로 볼 때도 참으로 국가와 일반서민을 위해 사자후를 토하는 정치인이 보인다. 그가 이즈음 가장 유튜브를 달구고 있는 허경영 대표다. 오로지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세로 이번 총선에 임한다는 그 정당은 뜻밖의 당선 바람을 몰고 올 것 같다. 어제오늘 BTS의 노래에 이어 영화 ‘기생충’이 세계에 한류 붐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정치도 세계인들이 부러워할 체제로 탈바꿈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 유권자들의 올바른 한 표 한 표에 나라 명운이 걸려 있다.  다음 생에는 정치꾼들과 우리 쥐가 뒤바뀌어 태어날지 모른다. 우리 흰쥐들의 살신희생이 헛되지 않기 바란다. 지난해 말 입적한 희양산 봉암사 적명대종사의 설법을 되새긴다. 상대를 아울러 함께하는 중도·불이사상이다. 올해는 윤년이어서 신정과 구정이 일월 첫 달에 같이 들었다. 나는 일부러라도 늘 보다 나은 오늘을 위해 자각몽(lucid dream)을 꾸고프다. 한민족의 큰 명절 설날이 다가온다. 일출 시조로 희원한다.

- 설날 해돋이 -

 섣달그믐 밤지새고
 돋는 해는 더 환하다
 
 한겨울 칼바람에
 맞는 볕은 더 따습다
 
 그늘져
 외진 데까지
 속속들이 비추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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