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인천대학교 교수
정진영 인천대학교 교수

 매년 1월이 되면, 두 개의 대형 글로벌 마이스(국제회의, 전시박람회 등 융복합 서비스산업)행사가 화려한 막을 올린다. 20만 명 이상이 참관하는 세계 최대 IT박람회 CES, 그리고 3천여 명의 각국 정부 관계자, 기업인 등이 세계 주요 이슈를 논의하는 세계경제포럼(일명 다보스포럼)이 바로 그것이다. 라스베이거스는 CES를 통해 도박 도시라는 이미지를 세계 초일류 마이스도시로 탈바꿈시켰으며, 인구 1만여 명의 스위스의 작은 시골 도시 다보스는 매해 많은 유명인사들이 초청장을 받기 위해 줄을 설 정도로 핫 플레이스가 됐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전 세계 국제회의 개최 건수 랭킹에서 이 두 도시 이름을 찾을 수 없다. 수치와 규모보다는 도시 브랜딩 구축과 지역사회 참여 등 마이스의 본질에 충실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일반적으로 마이스는 외부 소비를 역내로 끌어들여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방문객 경제(visitor economy)로 정의되지만, 최근 스마트폰 등 기술 발달로 관광객이 점점 더 로컬화되고 있으며, 지역주민의 마이스 참여 기회가 확대되는 등 방문객과 지역주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 최근 마이스 산업의 주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인천은 어떨까? 2015년 지자체 최초로 마이스산업과가 설립된 이후 인천의 마이스산업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인천관광공사 발표에 따르면 OECD포럼 등 대형 컨벤션 행사를 포함한 국제회의 개최 건수는 지난 5년간 347% 증가해 현재 세계 20위권 수준이며, 컨벤시아 2단계 완공, 송도 국제회의복합지구 지정, 파라다이스시티 개장 등 인프라 측면에서도 글로벌 마이스 도시로서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이렇듯 인천 마이스산업은 그간 외형적으로는 성장했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지자체 간 출혈 경쟁과 여전히 취약한 마이스산업 생태계는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인천의 전통적인 뿌리산업 및 지역사회와 유기적이고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아쉬운 점이다. 

인천 마이스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경제적, 사회문화적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주목해야 한다. 경제적 지속가능성은 마이스 수익이 지역 내 다양한 경제주체한테 공정하게 분배되는 것을 의미한다. 홍콩은 낙후된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팀빌딩 프로그램을 개발했으며, 도심의 마이스 참가자들이 원도심에서 유니크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태국의 컨벤션센터들은 지역농가와 식재료 공급 계약을 체결해 재료비를 절감하면서도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로 지역 경제가 반기는 것은 물론, 마이스에 대한 지역사회의 긍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마이스가 1차산업과 상생하는 모델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문화적 지속가능성의 핵심은 지역주민이다. 지역주민은 마이스산업의 중요한 공급자이자 참가자이기 때문에 인천의 마이스는 좀 더 적극적으로 주민들과 접점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마이스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학교와 민간기업, 그리고 공공기관 간 파트너십을 강화해야 한다. 재작년 인천시, 인천관광공사, 지역대학이 함께한 MICE 해외 마케팅 프로그램이 산학관 협력의 모범사례로 선정된 적이 있다. 인천 마이스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관계기관과 대학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인천의 정체성과 인천만의 색깔을 나타낼 수 있는 시그니처(signature) 마이스를 육성해야 한다. 유명 음식점에는 항상 시그니처 메뉴가 있다. 셰프의 자부심과 음식점을 대표할 수 있는 킬러 메뉴가 시그니처 메뉴인 것처럼, 시그니처 마이스는 인천시민의 자랑이자 자부심을 높일 수 있는 브랜드가 돼야 한다. 평화, 바이오, 스마트, 해양 마이스 등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천만의 가치를 찾아보자. 

셋째, 서울, 도쿄, 베이징 등 초대형 도시와 차별화되는 강점을 적극 활용하는 세컨드 티어(second-tier) 마이스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마이스는 규모와 참가 대상, 그리고 요구 조건이 매우 다양한 특성을 지니며, 특히 중소형 컨벤션이나 기업회의, 인센티브, 사교행사 등은 쾌적함, 합리적 비용, 안전성, 접근성 등이 특징인 세컨드 티어 도시에 대한 니즈가 높다. 인천은 이러한 세컨드 티어 마이스 조건에 정확히 부합한다. 더불어 마이스 참가자의 소비가 관광, 레저로 이어질 수 있도록 색다르고 특별한 블레저(Bleisure: Business와 Leisure의 합성어)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해야 한다. 

이제 인천의 마이스산업은 그동안 양적인 성장에서 지속가능한 번영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깊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개최 건수와 가동률 등 굴레를 벗어 던지고, 마이스가 지역산업 및 지역주민들과 어떻게 같이 성장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얼마 전 출범한 인천 관광·마이스 포럼은 산학연관의 협력적 정책 개발과 함께 이러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장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성숙하고 공정한 마이스 도시’로 인천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 생각의 지도를 바꾸는 작업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3개의 S (sustainability, signature, second-tier)가 그 방향타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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