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分五裂(사분오열)/四 넉 사/分 나눌 분/五 다섯 오/裂 찢을 렬

진(秦)나라 세력이 점차로 커지면서 나머지 여섯 나라를 압박하기 시작하자, 이에 두려움을 느꼈던 나머지 여섯 나라는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상호 간 외교적인 동맹 관계를 맺으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를 주도한 것이 바로 합종책(合從策)을 주장했던 소진(蘇秦)이었다. 

 소진은 육국을 돌면서 유세를 하고 다녔는데, 그중 위(魏)나라의 애왕(哀王)에게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합종을 주장했다.

 "위나라는 그다지 넓지도 않고, 병사도 30만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한 지세도 편편해 사방에서 제후들이 쳐들어오면 이를 막을 만한 산이나 요새도 없는, 그야말로 전쟁터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동쪽에는 제(齊)나라, 남쪽에는 초(楚)나라, 북쪽에는 조(趙)나라, 서쪽에는 한(韓)나라가 있어 호시탐탐 위나라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나라가 남쪽으로 초나라와 연합하고 제나라와는 연합하지 않으면 제나라가 동쪽을 치고, 동쪽으로 제나라와 연합하고 조나라와는 연합하지 않으면 조나라가 북쪽을 치며, 한나라와 연합하지 않으면 한나라가 서쪽을 치고, 초나라와 친하지 않으면 초나라가 남쪽을 공격할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사분오열의 도(四分五裂之道)’라고 하는 것입니다.  <鹿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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