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도 못되는 폭력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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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도 못되는 폭력의 정치
김상구 청운대학교 영어과 교수
  • 기호일보
  • 승인 2020.01.20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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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구 청운대학교 영어과 교수
김상구 청운대학교 영어과 교수

셰익스피어는 그의 극들에서 다양한 성격의 인물을 창조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처럼 돈에 집착하는 ‘샤일록’를 창조했는가 하면 햄릿과 같은 우유부단한 인물, 남을 쉽게 믿는 ‘오셀로’, 판단미숙의 리어왕을 만들어 냈다. 좀 더 거칠게 분류하면 위대하게 태어난 사람, 노력해서 위대함을 쟁취한 사람, 억지로 위대함을 만들어 가진 사람을 그의 극 속에 등장시켰다. 그러나 위대해 보이기 위해 이미지를 조작하거나 언론 담당 전문가를 고용해 위대해진(?) 사람을 창조해내지는 못했다. 그도 세상이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맥베스」는 스코트랜드 역사를 다루는 극이면서도 비극으로 분류된다. 장군이었던 맥베스가 왕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많은 악행을 저지르지만 그렇게 악인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의 내면에 심각한 도덕적 갈등을 빚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왕을 시해하고 왕권을 탈취한 자는 반드시 망하고 만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셰익스피어가 왕궁에서 그러한 내용을 담은 연극을 공연해야 후원이 지속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기에 이런 내용을 담았을 것이다. 

기존의 왕이었던 던컨 왕을 시해하고 왕이 된 맥베스는 불안함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장군이었던 맥베스는 반역자를 처단하고 돌아오는 길에 마녀들이 장차 왕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솔깃해 한다. 이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이미 그러한 욕망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녀들은 또한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는 맥베스를 죽이지 못할 것이라는 말과, ‘인버네스’라는 커다란 숲이 스스로 이동하지 않는 한 누구도 그를 죽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자 맥베스는 누구에게도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다시 갖게 된다. 마녀들의 말을 쉽게 믿는 것은 초월적인 어떤 힘을 믿는 것이며, 왕을 시해해야만 할 충분한 신념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왕의 권좌에 오른 맥베스를 패배로 이끈 맥더프 장군은 달(10개월)이 다 차서 나온 인물이 아니라 제왕절개를 통해 나온 자이며, 그를 따르는 많은 병사들은 머리에 나뭇가지를 장식하고, 숲이 움직이는 것 같은 모습으로 그를 공격해 오고 있다. 그와 맞닥뜨린 맥더프가 나는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자가 아니라고 말하자, 맥베스의 확신에 찼던 신념은 순간 무너져 내린다. 그는 마녀들의 말을 믿고, 왕을 시해하고 왕권을 지키기 위해 잘못된 살인을 저질렀던 것이다. 

맥베스 부인은 오히려 한술 더 떠서, 맥베스를 여기까지 오도록 안내하는 실질적 권력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때로 의지가 박약하거나 지친 맥베스를 여기까지 오도록 강요한 자가 그녀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맥베스 부부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부인은 몽유병자가 되어 객사하고 맥베스는 잠을 이루지 못해 환청과 환시에 시달린다. 그 내면에는 불안함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맥베스는 부인이 객사했다는 소리를 들어도 언젠가 들어야 할 말이었노라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허무주의자가 된 셈이다. 인생은 걸어 다니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며, 무대에서 한동안 활개치고 안달하지만 곧 사라지는 배우와 같다고 그는 말한다. 맥베스 말처럼 인생은 짧으며 정치가의 권력은 영원할 것 같지만 봄날에 잠시 피었다가 지고 마는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인지 모른다.

맥베스는 타고난 운명이 아니라 자신의 성격적 결함으로 인한 비극을 맞이한다. 저렇게 잘나 보였던 사람이 처참함을 맞게 되는 것을 보고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성격적 결함을 깨닫는 맥베스와는 다르게 ‘생업으로서의 정치인’이 이미지를 조작해 패거리들끼리 권력의 자리를 나누고, 상대진영을 폭력(violence)으로 위협하며, 흥에 취해 축배를 마시다 무엇이 잘못됐는지도 모르면서, 최후를 맞이하는 우리의 현실 정치는 비극의 자격에도 들지 못한다.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쓴 막스 베버가 살아 있다면, 균형 감각을 상실한 정치인이 잘못된 신념으로 열정을 보일 때 정치의 결과가 어떠할지 우리 현실정치로 그 책의 말미를 장식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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