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만으로 내가 속한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란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상상의 입구는 언제나 열려 있다. 거액의 로또에 당첨되는 꿈, 정말 갖고 싶었던 고가의 스포츠카를 사는 꿈, 어릴 적부터 꿈꿔 오던 장기 여행을 떠나는 꿈 등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봄직한 상상이다. 복권 당첨은 내 맘대로 이룰 수 없는 일이지만 여행을 떠나거나 사고 싶었던 물건을 구입하는 것은 현실에서 가능하다. 단, 장기 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으며, 스포츠카 구입 후 매달 갚아야 하는 카드 명세서를 보면 한숨이 깊어질 수 있다. 그런 현실적인 벽을 잘 알기 때문에 어른이 되면 무언가를 덥석 저지르기가 두렵다. 삶에 책임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성에 젖은 일상에 지쳐 간다면 환기가 필요하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평범한 소시민의 모험과 성장을 그린 영화로, 다시 한 번 새해 다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응원의 기운을 불어넣는 작품이다.

주인공 ‘월터 미티’는 현실적인 인물이다. 42번째 생일을 맞이한 미혼인 그는 아버지를 대신해 30년 가까이 가장으로 살아왔다. 가계부를 펴고 지출 내역을 꼼꼼히 정리하는 일상은 몸에 밴 오랜 습관이다. 생일이라 해서 특별한 걸 기대하지 않았지만 아침부터 희소식이 아닌 절망적인 뉴스가 전해진다. 16년간 몸담은 잡지 회사인 ‘LIFE(라이프)’지가 온라인 매거진으로 전향되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벌인다는 것이다. 필름 인화 일을 하던 월터는 해고 0순위에 가까웠다. 그런 그에게 폐간 마지막 호 표지 사진 인화라는 막중한 업무가 주어진다. 유명 사진가 숀이 직접 보낸 25번째 필름을 인화해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원본이 보이지 않았다. 월터는 사라진 필름을 찾기 위해 숀을 직접 찾아 나선다. 세계 곳곳에서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포착하는 작가를 만나러 가는 여정에서 월터는 생각지도 못했던 여행을 하게 된다. 

유년시절 모험을 꿈꿨던 월터는 특별할 것 없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소시민 월터가 해야 할 일은 여행이 아닌 성실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 속에서 숨통을 틔우는 작은 일탈이라곤 ‘상상 멍 때리기’였다. 호감 가는 직장 동료 셰릴에게 멋지게 프러포즈한 후 아름다운 노년을 살아가는 상상, 자신을 채근하는 직장 상사에게 액션 히어로처럼 강력한 펀치를 날리는 상상 등 오직 그의 머릿속에서만 색다른 일들이 가능했다. 그러나 상상이 깊어지고 잦아질수록 주변을 보지 못했고 자신감도 줄어들었다. 그 결과 그는 외로웠다. 그랬던 월터가 마지막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사진가를 찾아 나서며 진정한 모험을 하게 된다. 헬기를 타다 바다에 다이빙도 하고, 화산 가까이에도 접근했으며, 히말라야 등반도 이뤄 낸다. 상상이 현실이 된 순간, 그는 역동적인 세상을 경험하는 한편 사소한 일상의 아름다움도 깨닫게 된다. 

여행을 통해 성장한 월터는 현실과 단절된 상상에 빠지는 대신 상상을 실현한다. 자신을 지나치게 압박하던 상사에게 소신 있는 발언을 하고 짝사랑하던 여성에게도 한 발 다가간다. 그 결과, 매일 반복된 일상의 무료함 대신 미소가 번진다. 이 작품은 현실에 없는 것에 결핍을 느끼기보다는 실재하지만 인식하지 못한 행복과 용기를 기꺼이 응원하는 영화다. 2020년 세상의 모든 월터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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