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동 인천시 중구 우현로 20번길
이강동 인천시 중구 우현로 20번길

신촌을 주축으로 해서 십정동, 백마장 부근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 미군기지였다. 미군기지로 인해 부평보다는 신촌이 시민들에게 더 알려져 있었다. 미 주둔군이 늘어나자 1960~70년대 음식점, 상점, 주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인천에서 가장 활력이 충만했던 곳이다. 미군 피엑스에서 나오는 각종 식품과 상품들이 넘쳐났다. 무엇이든 미국제품들을 구매할 수 있었다. 신촌 지역 상인들은 미군들을 상대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경제자유특구 상가지역이자 관광특구로 이미 1960~70년대 성황을 누렸던 곳이다. 

신촌에서 산곡동 화랑농장과 백마장으로 넘어 가는 길을 따라 가면 넓은 미군기지 경내가 속속들이 다 보였다. 아침 기상을 알리는 트럼펫 소리를 시작으로 미군들의 일상 생활 모습과 훈련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미군 헬기장에서는 미국 본토에서 공수해 온 군수품들을 분리 운반하는 모습이며 미군병원의 분주한 모습들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곳이었다. 그 무렵 외발자전거를 미 여군들이 핫팬츠 입고 경쾌하고 자유자재로 능숙하게 타는 모습을 처음으로 본 곳이 신촌이었다. 

신촌은 낮보다 저녁시간부터 더욱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일과 시간을 마치고 외출하는 미군들이 신촌으로 나와 음식점, 상점, 주점들을 쇼핑하면서 신촌은 인천 최고의 미국달러 거래시장이 된다. 미군들의 부대생활과 외로움을 위로해 주는 안식처 역할을 충분히 해 줬던 신촌은 군사지역이라 군경과 미 헌병 합동으로 검문 검색이 수시로 있었다. 미 여군 헌병들의 근무 모습도 인상에 남아 있는 신촌이다. 

1960~70년대 인천에서 가장 활력 넘쳤던 신촌의 상징성으로 남아 있는 것이 있다. 꿀꿀이죽, 팝뮤직, 양공주를 빼놓을 수 없다. 

꿀꿀이죽은 미군기지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찌꺼기들을 모아 수집상들이 가지고 나와 비료로 쓰이지 않고 지역주민들에게 판매했다. 리어카에 싣고 다니며 깡통에 담아 팔았다. 몇 백 원 주면 큰 깡통으로 가득 채워줬다. 꿀꿀이죽 한 깡통 속에는 그 시절 쉽게 먹을 수 없었던 고깃덩어리와 소시지들이 많이 있었다. 경제가 어렵던 시절이라 보건소와 경찰 단속을 받지 않았던 꿀꿀이죽 장사꾼 오기를 기다리는 주민들도 많았다. 먹기 전 들에서 땔감을 주워 모닥불에 소독도 할 겸 꿀꿀이죽을 끓이면 음식 냄새가 무척 좋았다. 서양음식은 이런 냄새가 나는 것으로 인식하고 신촌에서 인천으로 통학하던 친구들과 맛있게 몇 번 먹었던 일이 있었다. 

신촌은 우리나라 팝뮤직의 발원지라 할 수 있다. 방송보다 먼저 최신 팝뮤직 음악이 들렸던 곳이다. 미군기지 피엑스에서 나오는 센티하고 다양한 음원의 음반들을 구매하려는 시민과 음악인들이 신촌으로 많이들 찾아왔다.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미 여가수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팝뮤직의 음악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줬던 어릴 적 미 여가수의 감미로운 목소리의 기억을 줬던 신촌이다. 수많은 미군들이 주둔하고 있었던 신촌에는 힘들고, 어렵고, 슬프고, 강하게 생활해 줬던 우리들의 손윗누이들이 있었다.

동네에서 만나면 초콜릿, 껌 등을 건네주기도 했던 누이들의 또 다른 이름 양공주로 생활해야 했던 많은 누이들은 신촌에서 미국달러 수입이 대단했다. 인천지역 외화 보유율을 높이는데 있어 큰 역할을 해주기도 했던 양공주 누이들이었다. 일본 전범기업 기숙사 건물 등에서 거주하며 미군들의 말벗, 친구, 부부가 돼 생활하다 군복무 기간을 마치고 아내와 자식들을 버리고 몰래 도망치는 미군들도 많았으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다 군복무 기간 마치고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당당한 미국시민으로 생활하는 인천 출신 양공주 누이들이 많았다. 

여러 추억과 애환들을 갖고 있는 신촌 미군기지가 완전하게 반환됐다. 미군기지 부지를 어떠한 용도로 사용할 것인지 궁금하면서도 기대감이 많다. 넓은 부지는 당연히 시민을 위한 용도로 사용돼야 하며 미군이 주둔하며 사용하던 군시설물들을 보존하며 개발하는 계획도 있어야 한다. 미군기지의 역사물들은 인천 신촌의 상징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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