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단성식이 쓴 「유양잡조」에 ‘타초경사(打草驚蛇)’의 고사가 나온다. 현령 지위의 왕로가 재물을 탐하고 법을 업신여겨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아 축재했다. 어느 날 백성들이 현령에게 고발장을 냈는데 주부가 탐욕스러워 뇌물을 챙겼다는 내용이었다. 왕로는 깜짝 놀라 고발장의 결재란에 여덟 글자를 썼다. "여수타초오이경사(汝雖打草吾已驚蛇 : 너는 비록 풀을 건드렸지만 나는 이미 놀란 뱀이 되었다)." 이 말이 그 후 네 자로 숙어화된 것이 타초경사. 여러 경우에 갖가지 해석과 사례, 응용에 대한 얘기가 꽤 많은데 중국 귀주성의 ‘마오타이주(酒)’에 대한 것이 압권이랄 수 있다. 

1950년대 초반 미국에서 국제주류품평회가 열렸을 때였다. 포장 용기와 술병 디자인이 볼품없는 까닭에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자 중국 대표 하나가 슬쩍 실수하는 척하면서 술병 하나를 밀어뜨려 깨지게 했던 것. 순식간에 술 향기가 진동하자 심사위원들은 깜짝 놀랐고 여기저기서 술맛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 일로 ‘마오타이 주’는 명주로 꼽히고 중국의 대표적 술로 영예를 누리게 된 것이다. 원래 이 술은 1934년 모택동이 대장정을 시작했을 때 공산당 홍군에게는 사기를 앙양시켜 주는 역할을 했고, 상처를 소독하는 약품 대용으로도 사용됐다고 전해진다. 그러니까 중국에서는 국주(國酒)의 지위를 일찌감치 차지했던 것. 

그래서인지 중국 공산당 고위층의 손님 대접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품목이 됐고 얼마 전에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게 2억 원짜리 ‘마오타이주’를 대접한 시진핑 주석의 통 큰 대접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술과 관료의 부패는 마치 짝을 이룬 듯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병당 134만 원짜리 마오타이주를 송년회에 올렸다가 초호화 행태로 지탄 받아 국유기업 광명건설발전그룹 회장이 면직 처분된 데다 일주일 전 부패로 쫓겨난 귀주성 부성장은 집에다 4천 병의 술을 감춰뒀다가 적발됐다고 한다. 

그는 마오타이주 가격이 급등하자 투기 목적으로 제조사에 압력을 넣어 대리점 경영권과 131t의 술을 할당받은 것. 고위 관료들만 이 술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지난해 상하이에 중국 1호점을 낸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의 대성황에도 마오타이주가 한몫 단단히 했다. 이날 약 23만 원짜리 ‘마오타이 비천(飛天)’이 출시되고 1인당 1병으로 구매를 제한했으나 이틀 만에 1만 병이 모두 동났다. 마오타이 제조사 회장은 이를 두고 "마오타이주는 마시는 것이지 투기 대상이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하지만 투기에 가까운 ‘마오타이주’ 사랑은 춘제(중국 설)를 앞두고 더욱 가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요즘 희귀성 폐렴으로 어수선한 우한시에서는 3년 전부터 부패 관료들로부터 몰수한 각종 물품을 공개 경매하고 있는데 지난해 경매에서 총 낙찰액 5억4천만 원의 거의 70%에 달하는 3억8천300만 원이 ‘마오타이주’에서 나왔고, 올해는 더욱 심해지리라는 것이 현지의 분위기. 주로 5∼6병씩 함께 포장된 선물용 ‘마오타이주’는 15년산부터 50년산까지 다양했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경매에서 진품 여부를 감별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보도에 따르면 가짜가 분명 있었을 텐데 경매 참가자들이 개의치 않는 열기를 띠었다는 것이다. 가짜일 가능성까지 신경 쓰지 않는 ‘마오타이주’ 사랑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중국은 사회를 철저히 통제하는 나라로 악명(?)이 높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결정하면 온갖 방법을 총동원해 국민들에게 강제한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협박·핍박은 물론이고 버티지 못하게 하는데 인정사정이 없다.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관료에게는 강력한 징계가 뒤따른다. 타초경사로 세계적 명주 반열에 올라 중국의 자존심을 한껏 올려준 ‘마오타이주’가 중국 관료의 부패와 사치 행태에서 빠지지 않고,  극진한 사랑(?)의 대상으로 된 현상, 좋아하면서도 두려움의 대상이 된 ‘마오타이주’에서 중국의 현실이나 중국인의 의식 구조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투기와 뇌물, 접대와 선물의 양면성이 담긴 이 술에서 한중 관계의 미래를 점쳐보는 것이다. 아예 술을 안 마시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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