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일보=디지털뉴스부]

가수 양준일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며 1월 27일 오후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했다.

1월 27일 재방송된 JTBC ‘특집 슈가맨, 양준일 91.19’에서 양준일은 부인과 5살 아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이날 양준일은 “우리 아들이 성인이 되면 제가 70살이 된다. 내가 그때 살아있으려나 그런 생각이 든다”며 “건강하게,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한 “유일한 취미는 5살 아들 쫓아다니는 것이다. 저를 많이 닮았다. 가면 갈수록 더 닮는 것 같다”면서 “태어나 조리원을 갔는데 별명이 ‘와일드’였다. 와일드가 한국말로 야생인가요? 다른 아기들은 ‘앵앵’거리는데 우리 아기는 동물 소리를 냈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모든 애들이 같이 있는데 얘가 배가 고프면 다 깨곤 했다"고 전해 웃음을 자아냈다.

또 그는 “‘슈가맨’ 촬영할 적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 애가 밖에서 뛰었다.

그런데 여기 문들이 다 투명하지 않나. 그래서 얘가 그걸 박아버렸다. 아프니까 울기 시작하는데 그런데 울면서 또 뛰었다”면서 “제가 피곤해요”라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방송 후 양준일 부인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앞서 ‘슈가맨’ PD는 “양준일 부인이 남편의 무대를 ‘슈가맨’ 방송을 통해 처음 봤다. 무대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더라”고 전한 바 있다.

양준일은 지난달 25일 방송된 JTBC '뉴스룸'에 '문화 초대석'에 출연해 최근 신드롬에 대한 심경을 털어놓은바 있다.

1969년생으로 올해 나이 쉰 두살인 양준일은 서울특별시 수유동에서 태어나 1978년 미국으로 가족 이민을 떠난 후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비즈니스를 전공하던 중 연예기획사 사장인 이범희를 만나고 가수 데뷔 제의를 받았다.

21세때 한국으로 돌아와 가수로 데뷔했으며 작사, 작곡, 무대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재능을 갖춘 남성 음악가로서 호평을 받았다. 1991년 한국에서 가수 활동을 시작해 1993년까지 2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활발히 활동하였으나 당시 비자 문제 등 여러 이유로 그해 가수 활동을 접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1991년~1993년 한국 활동 당시, 흔하지 않은 세련된 외모, 이국적 퍼포먼스와 강렬한 무대 매너, 개성이 강한 음악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그러나 곱상한 외모, 앞서간 패션 감각, 거침없는 무대 매너 등은 당시의 한국 가요계의 정서와 맞지 않아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그가 활동을 접고,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는 그의 음악이 시대를 너무 앞서가 당시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되지 못했다고 평가되곤 한다.

한국을 떠난 그는 미국에서도 여러 뮤지션들과 함께 꾸준하게 음악활동을 이어갔고, 수년의 준비 끝에 2001년 한국 가요계에 다시 컴백한다.

그는 2001년 봄, 앨범 Fantasy를 발표하고, V2라는 프로젝트 그룹의 쟈이(JIY, 양준일의 영문 이니셜)로 활동을 재개하였다. 양준일은 당시 나름 인기를 얻었으나, 아쉽게도 소속사와의 마찰 등 여러 문제로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가 없게 되어 자연스레 가수생활을 접게 됐다.

그 후 양준일은 한국 가요계를 완전히 떠나 영어 강사로 활동했고 수년 전 미국 플로리다로 건너갔다.

2018년부터 온라인 상에서 그의 오래 전 영상의 매력적인 외모와 퍼포먼스를 비롯, 30여년을 앞서간 음악, 독특한 노래 가사 등이 뜨거운 화제가 되면서, 많은 대중들이 그의 음악과 예술성에 대한 재평가를 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그는 오랜 공백 끝에 2019년 12월 6일 방송된 슈가맨 3를 통해 30년만에 무대로 복귀하게 됐고 이후 양준일의 과거 무대 영상이 다시 회자되며 '시대를 앞서간 가수'라는 평가를 받으며 대중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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