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 씨는 지난 30년간 차례상에 올릴 4가지 과일을 조상들이 먹기 좋게 정성스럽게 깎아 왔다. 그런데 이번 설에는 왜 과일의 위와 아래 부위만 편평하게 돌려서 깎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 씨가 깊이 생각해 보니 다 깎거나 아니면 평소처럼 잘라 접시에 담아 놓은 편이 돌아가신 영혼들의 음미·음향(吟味·吟香)을 위해 타당해 보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누구도 50대에 접어든 한 씨에게 사과와 배, 감을 왜 일부분만 그렇게 깎아야 하는지 알려 줄 만한 사람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한 씨는 현대 우리나라 제사의 주축이자 중국 유교 예법의 뼈대인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찾아봤다. 그런데 6개의 과일을 놓는다는 언급이 있을 뿐 그 과일이 무엇인지, 그 과일을 어떻게 깎아서 놓는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주자가례를 바탕으로 조선시대에 편찬된 「사례편람」에는 오히려 과일 개수가 4개로 줄어 있을 뿐 자세한 사항은 없었다. 

한 씨가 조선 후기에 나온 「상례비요」를 참고해도 차례상 맨 바깥 줄에 6개의 과일을 놓는다고 명시 됐을 뿐 그 과일이 무엇인지, 그 과일을 어떻게 깎아서 놓는지는 역시 나와 있지 않았다.

결국 한 씨는 땅에 뿌리를 내리는 과일은 진설할 때 그릇 수를 음수에 맞춰 짝수로 하는 것은 음양오행에 근거하고 있었으나, 그릇 안에 과일을 한 씨처럼 홀수로 담는 것이나 과일의 위·아래 부분을 편평하게 깎는 것은 문서 상으로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결론에 닿았다. 알고 보니 집안의 부(富)와 조상에 대한 정성을 과시하기 위해 잔칫상이나 제사상 등에 과일을 높게 쌓는 집안들이 있었고, 이 집안의 문화가 일반 가정으로 퍼지면서 과일을 그런 식으로 깎게 됐다는 것이다. 

둥근 과일을 쌓고 고이기 위해 꼭지와 밑동을 수평으로 잘랐다는 사실을 안 한 씨는 그만 오십 평생이 허망하게 생각됐다. 그동안 조상 제사상에 과일을 높이 쌓을 필요도 없었을 뿐더러 4가지 과일의 진설법인 ‘조율이시’니 하는 것도 결국은 조선시대 임금과 신하들의 관직 순을 차례상에 반영한 것이라는 현실에 한 씨는 무너졌다. 한 씨는 조상에 대한 예는 지켜 가되 더 이상 유교적 잔재로 자신을 비롯해 가족 누구도 힘들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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