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농협대학교 부총장
이선신 농협대학교 부총장

‘공권력(公權力)’이란 국가나 공공단체가 국민에 대해 우월한 의사주체로서 명령·강제하는 권력을 말한다. 공권력이 인정되는 근거는 국민이 그러한 권한을 국가에 ‘위임’했기 때문인데, 그 기초를 설명하는 이론이 이른바 ‘사회계약설’이다. 사회계약설은 ‘국가는 사회 구성원들의 묵시적 계약에 의해 성립됐다는 이론’인데, 근대 계몽철학자들(홉스, 로크, 루소 등)에 의해 주창됐다. 여기서 잠시 영국의 법철학자 홉스(1588~1679)의 견해를 들여다보자. 홉스에 따르면 인간은 원래 이기적 본성을 지니는데(성악설적 견지) 자기보존과 욕구충족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제압하고 해치게 된다(‘인간은 인간에 대하여 늑대’다). 

결국 ‘자연상태’ 하에서 인간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The war of all against all)’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폭력적 자연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각자의 ‘힘’을 국가에 양도하고 그 권력에 복종하기로 하는 ‘계약’을 맺게 된다. 즉, 인간은 ‘자연상태’를 ‘사회상태’로 돌려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안전과 평화를 보호받는다. 이처럼 국가는 국민들로부터 폭력과 갈등을 강제적으로 해결할 ‘힘(Force)’을 위임받게 되는데, 국가가 그 기능(사회계약의 목적 달성)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 그 권력은 ‘절대적’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독재’도 ‘무정부’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이러한 홉스의 견해는 국가 내지 국왕의 절대권력을 정당화함으로써 군주제를 옹호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국민의 안전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 국가가 ‘강한 힘’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에는 분명 수긍할 만한 점이 있다.

최근 검찰 개혁 과정에서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검찰 직제개편, 대폭적 검찰 인사 등과 관련해 지나친 ‘검찰 힘 빼기’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서울중앙지검의 반부패수사부 4개를 2개로 축소하고, ‘청와대 하명수사’ 등을 수사해온 공공수사부를 축소하는 것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직제개편에 대해 반론이 많다. 당초 검찰은 법무부가 마련한 직제개편안에 대해 "형사부·공판부를 강화하는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전문성을 요구하는 전담부서의 경우 신속하고 효율적인 범죄 대응을 위해 존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출했는데,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수사 차질과 반부패 수사 역량 약화 등을 우려하는 취지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지만 검찰의 의견은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통과한 직제개편안에 별로 반영되지 않았다. 또한 23일 단행된 검찰 인사에 있어서도 윤석열 검찰총장의 의견이 별로 반영되지 않았다. 이러한 법무부의 주도적 조치들을 두고 야당 등 일부에서는 지나친 ‘검찰 무시, 힘 빼기’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는데, 이들의 우려와 주장도 참작할 필요가 있다.

생각건대, 검찰 개혁이 제기된 주요 이유는 종래 관행처럼 이어져온 검찰의 정치권 눈치 보기,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이중성, 인권침해 수사, 편향수사, 늑장수사, 제 식구 감싸기 등이다. 그런데, 이들은 주로 검찰권의 ‘오·남용’에서 비롯된 문제들이지 단지 검찰의 ‘강한 힘’ 때문에 발생한 문제들은 아니다. 물론 검찰 권력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검찰의 권한 자체를 약화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검찰이 약화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아마도 범죄자들과 예비범죄자들이 좋아할 일이다. 

범죄는 나날이 지능화·고도화하고 있다. 이에 대처해 검찰의 역량도 더 강화·전문화돼야 한다. 인지수사, 직접수사를 줄이겠다고 하는데, 수사를 고소·고발에만 의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조직적·구조적인 범죄, 대형 공공·경제범죄 등은 검찰이 스스로 단서를 찾아 인지수사, 직접수사를 벌여야 마땅하다. 검사는 ‘공익을 대표’하며 공권력의 핵심역할을 담당한다. 수사·기소 과정에서 피의자의 인권이 존중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사·기소가 소홀히 이뤄짐으로써 선량한 시민들의 인권·이익·안전이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돼서는 안 된다. 검찰 개혁이 지나치게 ‘검찰 힘 빼기’에 치우치면 안 된다. 법무부와 검찰이 향후 잘 협력함으로써 국민이 불안하지 않게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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