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지하도상가 조례를 두고 손바닥 뒤집듯 바뀐 박남춘 인천시장의 입장이 행정력 낭비만 초래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상생협의회 구성으로 조례 개정에 소통을 강화한다는 계산이지만, 이로 인해 시와 시의회, 상인 간 수개월에 걸친 갈등은 결국 ‘헛심 공방’이 되고 말았다.

그동안 시와 인천시의회, 지하도상가 상인들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린 이유는 조례 개정을 두고 "원칙대로 하자"는 박 시장의 의지가 단호했기 때문이다. 박 시장은 그동안 기자간담회 등에서 수차례 "조례 개정은 불가피하다"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강하게 내비쳤다.

이에 따라 시는 지난해 8월 ‘인천시 지하도상가 관리 운영조례 전부개정조례안’을 인천시의회에 상정했고, 기존에 허용되던 양도·양수·재임대를 전면 금지하고자 했다. 다만, 상인 피해 최소화를 위해 부칙에 유예기간을 두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상인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고, 이를 의식한 시의회 건설교통위원회는 ‘사회적 합의’를 요구하며 개정안을 보류시켰다.

상임위의 보류 결정에도 시는 조례 개정을 다시 추진했고, 합의를 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쳤다. 시와 상인 등 이해당사자를 제외한 법조계·언론계·학계·시민사회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공론화협의회를 운영했고, 시 차원에서도 상인과의 간담회를 수십 회 진행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상임위는 조례안 부칙의 유예기간을 늘려 수정가결했고, 그대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시는 이에 반발해 재의를 요구했고, 결국 조례 개정은 해를 넘기게 됐다.

6개월여간 이어진 이 같은 갈등과 논의는 29일 시와 ㈔인천시지하도상가연합회가 합의한 상생협의회 구성으로 사실상 헛수고가 됐다. 조례 개정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바꾸지 않았으면 모를까, 결국 상생협의회를 만들 거였다면 지하도상가 문제를 이렇게 길게 끌고 올 필요가 없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박 시장도 결국은 총선을 앞두고 지하도상가 표심을 의식해 물러선 것 아니겠느냐는 시선도 있다. 총선을 80일도 채 남겨 두지 않은 시점에서 갈등이 더욱 심화되자 진화에 나섰다는 것이다. 앞서 시의회도 조례개정안을 수정가결하는 과정에서 "상인과 그의 가족, 친지까지 고려했다"며 총선을 의식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지역의 한 관계자는 "결국 조례 개정이 해를 넘긴 상황에서 상인들과의 합의 없이는 시가 주도적으로 유예기간을 줄이거나 양도·양수·재임대를 금지할 수 없게 된 것 아니겠느냐"며 "시 내부에서도 박남춘 시장의 결정에 허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김희연 기자 khy@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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