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10년 전, 마나베 히사오는 12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접고 ‘재팬블루’라는 청바지 생산업체를 차렸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가 쇠퇴하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선택한 것이었다. 도시의 혁신으로 청바지 업체를 차린 까닭은 도시의 전통과 연관이 있었다. 100년 전인 1919년 청바지 생산이 연간 2천만 켤레를 정점으로 뒷걸음치다가 기존의 생산시설을 재빨리 학생복과 작업복 생산으로 돌려 성공했고 한때는 일본 전역의 학생복 70%를 공급할 정도였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중고생 수효가 줄어들면서 그의 고향 도시에 몰려 있던 의류 생산 업체는 속속 문을 닫았고 거리는 어느 새 빈 점포가 늘어선 ‘셔터 거리’로 변해버렸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인적도 거의 끊어졌다. 지역경제가 곤두박질한 건 자명한 이치. 마나베가 이런 굴곡의 전통을 염두에 두고 섬유산업을 다시 일으켜 도시혁신의 자극제로 삼기로 결심해 ‘고지마 청바지 거리 추진협의회’를 결성한 때가 2009년. 그는 마을을 살리기 위한 일이라며 주변 상인들을 차례차례 설득했고 지금은 점포 40여 곳이 줄지어 선 이른바 ‘청바지 거리’가 탄생했으며, 이 프로젝트가 화제를 모으면서 섬유 관련 산업 전반에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해서 10만 마을 수준을 뛰어넘어 인구 40여 만의 도시에 엄청난  도시재생 탄력을 불어 넣게 된 것이다.

청바지가 불러온 작은 날갯짓에는 행정 당국의 지원과 지역 상호신용금고 등을 통한 무보증·저리 대출을 통해 옛 건물 등을 보전하게 했고, 적정 임대료를 설정해 상인들이 권리금 부담 없이 입주하도록 돕고, 옛 방직공장 터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해 관광 등 다른 산업으로 확대 발전시키는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이 도시를 찾은 관광객 수효가 무려 500만 명. 단순히 스쳐가거나 구경 온 사람들이 아니라 청바지 만들기 체험을 비롯해 청바지 색깔 아이스크림과 빵, 청바지로 포장한 커피 원두, 기타 섬유 제품을 구입하고 즐기는 젊은이들이 넘쳐났다는 사실이다. 

이미 3년 전 일본 정부는 이 청바지 거리를 콕 집어 ‘지방 창생(지역살리기)’ 정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소개한 바 있음도 간과할 수 없다. 이웃나라의 성공 사례가 우리에게 별다른 교훈을 주지 못한 건 순전히 우리의 도시재생이 지닌 한계 때문이기에 더욱 그렇다. 

도시와 산업의 재구성에 관한 나름의 연구·개발은 시급한 과제다. 흔히 전환도시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미국의 포틀랜드 경우가 쉽게 사례로 지적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서도 곱씹어 볼 점이 많다. 포틀랜드가 전환도시로 나아간 계기는 1970년 교통과 토지 이용의 시스템 전환이었다. 강변의 고속도로를 폐쇄하고 연방정부 지원 자금은 도심 대중교통망 건설에 투입했고, 도심공동화에 대응하기 위해 도시의 모든 건물과 부지 용도를 정하는 계획적 ‘조닝’ 원칙을 철저히 집행했다. 도시개발에 환경 원칙을 적용하고 도심의 16% 면적을 공원으로 조성했다. 

이리하여 1960년대 이후 제조업 쇠퇴와 함께 도심 공동화와 슬럼화가 진행되던 것을 전환시켜 ‘주민들에 의한 공동체’라는 자부심까지 생겨났고, 지역주민들과 협력 조직으로 50개의 어소시에이션이 활동해 행정조직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 다양성 사업을 수행해 숱한 성과를 거뒀던 것이다. 하지만 포틀랜드는 지금 대응하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당초 포틀랜드는 도심 인구 40만 명을 기준으로 계획했는데 현재 인구가 60만 명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대규모 부동산 개발과 집값 상승이 뒤따르는 건 당연사. 이제 새로운 도시계획을 짜고 있는데 어려움이 한둘이 아니다. 

빈곤, 불평등, 노숙자 문제를 비롯해 성장의 그늘이 지닌 어둠이 너무나 짙기 때문. 도시는 변하기 마련이고 산업구조는 부침을 겪는 게 당연지사. 새로운 계획이 필요하고, 성장과 구조전환을 조화롭게 결합시키는 일은 중요하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정도다. 가까운 일본의 한 소도시에서 일어난 도시재생과 포틀랜드의 전환도시 결과는 오늘날 숱한 도시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고향이 활력을 잃고 죽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워 시작했다"라는 한 전직 공무원의 고백이 가슴에 와닿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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