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저서 「목민심서(牧民心書)」를 통해 목민관의 덕목 중 하나로 찰물(察物)을 꼽았다. ‘세상물정을 살피라’는 뜻의 찰물은 백성의 고충과 애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장을 직접 살펴야 한다는 의미다. 현장에서 시민의 애로와 고단한 목소리를 직접 듣고 소통하며,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단체장들은 흔히 소통을 강조하지만 사실 소통이라는 단어는 그저 구호처럼 쓰이는 경구(警句)가 된 지 오래다. 입만 열면 소통을 말하지만 시민의 고충과 애로를 현장에서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정책에 담아내려는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는 의문이다. 

인천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지하도상가 문제를 손바닥 뒤집듯 한 박남춘 시장의 태도를 보면서 찰물의 의미를 더 소중하게 새기게 된다. 박 시장은 기존에 인천지역 지하도상가에 허용되던 양도·양수·재임대를 전면 금지한다는 취지로 지난해 8월 ‘인천시 지하도상가 관리 운영조례 전부 개정조례안’을 인천시의회에 상정했다. 상위법에 위반된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상인들이 생존권을 주장하며 강력히 반대했음에도 "원칙대로 하자"는 박 시장의 단호한 의지에 시와 상인들은 평행선을 달리며 대치해왔다. 박 시장은 언론과 시의원들의 우려에 대해서도 "조례 개정은 불가피하다"며 강경한 입장을 꺾지 않았다. 

하지만 박 시장이 놓친 부분이 있다. 목민관으로서 현장을 제대로 파악했느냐이다. 누구도 아닌 인천시가 만든 조례에 따라 장사를 해왔던 3천500여 지하도상가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피해 규모를 정확하게 산정하고, 상인들의 얘기를 제대로 들었는지도 의문이다. 그렇게 조례를 상정한 후 6개월여 동안 시의회는 조례안 수정과 재의가 이어졌고 그 사이 시와 상인간 극한 마찰도 이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갑자기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시는 지난 29일 ㈔인천시지하도상가연합회와 ‘인천시 지하도상가 상생협의회’ 구성에 합의했다. 상인들을 구제하는 내용의 조례개정 등 상인의 입장이 많이 반영된 내용이 담겼다. 표면적으로는 박수 받을 일이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크다. 여전히 분쟁의 소지가 남아 있다는 부분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쉬운 결정을 왜 빨리 내리지 못했는지. 왜 6개월 동안 끌면서 시간과 행정력을 낭비하고 갈등에 따른 사회적 손실을 자초했는지 속내가 궁금하다. ‘찰물’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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