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작년 말 어느 날 저녁나절, 쌀쌀했지만 무슨 사명감 같은 것에 끌리듯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서울 중랑천 다리를 보기 위해서였다. 요즘은 잘 정비된 천변에다 여러 개 다리가 거기 놓여 있다. 그 가운데 중랑교 옛 철길, 이 다리 아래 가마니 움막에서 한 아기가 탄생한 적이 있다. 동족상잔의 참극 한국전쟁이 일어난 해 1950년 1월 1일, 산모는 홀로 출산하다가 그만 강추위에 몸이 얼어 병약해졌다. 당시 경남 진주 지방의 대지주였던 그의 남편은 1만여 마지기 전답을 소작인들에게 나눠줬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있었다. 그 아기가 바로 오늘날 연일 유튜브를 달구고 있는 인물, 국가혁명배당금당 허경영 대표다. 

남편 면회차 만삭의 몸으로 상경했던 그의 모친은 전쟁 발발 사흘 전 사형이 집행되자 시신도 찾지 못한 채, 진주 지리산자락으로 귀향한 뒤 산후병으로 앓다가 4살의 어린 허경영을 두고 별세했다. 엄마가 중환자여서 아기는 동냥젖을 얻어먹어야 했으며, 전염될까봐 돌아가실 때까지 옆에 가지도 못했다. 끝내 가시기 며칠 전 눈물을 흘리며 어린 아들의 뺨을 잠깐 만져주신 게 이승의 마지막이었다. 허경영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사랑은 전혀 받지 못했다. 친부모 없이 자란 절대 고독 속 어린 시절, 그의 자서전 「무궁화 꽃은 지지 않았다」의 앞부분에 나오는 정경이다.

나는 1970년대 중반부터 중랑교 근방 판자촌 따위에 산 적이 있다. 동병상련이랄까. 작년 말의 중랑천변, 허경영이 태어난 철교 밑, 둑방, 강물들을 다시 둘러볼 때엔 숙연하다 못해 타는 속울음에 눈시울을 적셨다. 철길 바로 위 밤하늘 달무리도 흥건히 젖어내렸다. 그는 18세 야간고 3학년 때 북한산 줄기 노고산 흥국사에 기거한 적이 있다. 그 절에는 폐결핵으로 요양하던 대학 3년생 누나뻘 여성이 있었다. 밤 11시쯤 공부를 마치고 구파발 버스 종점에서 4㎞ 거리 캄캄한 계곡길을 올라갈 때면 그 누나가 켜놓은 방 불빛이 이정표가 됐다. 절에 다다르면 자기가 먹을 밥을 따뜻한 아랫목에 묻어두었다가 꺼내줬고, 주변 산에 땔감을 할 때면 옆에서 수많은 명시를 읊어주던 그 누나가 숨을 거두자 슬픔과 그리움에 겨워 많이도 울었단다. 

그 절을 떠나면서 소년 허경영은 낳아준 어머니가 새삼 그리워서 바로 이 중랑교 철길 아래에 와 밤새우며 다 떨어진 책가방을 끌어안고 또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과문한 나는 남의 ‘자서전’을 별로 읽지 못했다. 젊은 한때 김구의 「백범일지」나 리영희의 「역정」 정도가 스친다. 자서전은 말 그대로 대필이 아닌 자기가 써야 진득한 맛이 난다. 허경영의 이 자서전은 비록 편집이 좀 아쉽기는 하나 내용의 절절한 감동이 이를 덮고도 남는다. 돌아가신 엄마 상여가 나갈 때 동네 아주머니들이 "너네 엄마 꽃가마 타고 서울 간다"는 말에 4살짜리 철없는 아이는 춤을 추며 자랑했고, 이에 온 마을이 눈물바다가 됐던 일. 6살 머슴 시절에 만난 깡마른 송아지를 자기가 먹을 보리밥을 줘가며 키워 새끼까지 낳았는데, 도살장으로 끌려가자 마침내 상경하기로 결심했고, 그날 저녁 15살 소년은 마구간에 남은 새끼송아지와 쓸어안고 말없이 울었던 일. 무정한 인간사. 그런 속에서도 불우자를 돕고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베푼 수많은 선행들. 눈물의 후광이었다.

2000년 발간 후 1천250만 부나 팔렸다는 이 책을, 나는 온라인 중고서점에서 최근 몇 배 비싸게나마 구입했다. 그 책 속에 비친 허경영의 성장기는 너무나 인간적이며 파란만장한 눈물의 고행 그 자체였다. 아무나 겪을 수 없는 어릴 적 피눈물은 사랑과 자비심으로 승화돼 굳센 청년으로 성장했다. 요즈음도 젊은이 못지않은 드맑고 밝은 모습으로 서민들과 어울려 펼치는 제반 활동은 유튜브가 선봉이 돼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누구나 직접 보고 듣게 되자, 시중에 떠돌던 괴짜니 헛말이니 하는 풍문들이 해소되고 있다. 

초·중·고·대학을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면서도 숭산 스님, 홍근섭 목사, 이병철 회장의 양아들이나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보좌역이 됐다 한다. 이런 분이 어찌 어려운 서민의 심정을 모르겠는가. 여러 교리를 터득하고,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밑바닥과 꼭대기를 두루 경험한 분. 지금도 한결같이 이 나라를 바로잡는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분, 허경영! 내 협량에 이제라도 일별한 것이 영예롭다. 눈물은 아픔과 슬픔을 넘어 화해와 포용으로 영근다. 단시조로 덧칠한다.

- 속눈물 -

 눈물 속 피눈물은
 겉으로는 잘 모른다
 
   슬픔을 뛰어넘어
 웃움으로 꽃피워도
 
   흐르고 
 흘러서 맺힌 
 눈물 열매 속 씨앗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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