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문학산에서 내려온 물줄기는 미추홀구 학익사거리 인근에 모였다가 현재 재건축이 추진되는 장미아파트 뒤편을 통해 바다로 합류했다. 이 물줄기를 이용해 학익동 선인들은 농사를 지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학의 날개를 펼친 형상을 닮았다 하여 학익리(鶴翼里)로 불렸던 학익동은 이렇게 산을 빼면 논이 약 48%, 밭이 37%인 우리네 농경마을이었다.

하지만 문학산 물줄기를 이용해 넓은 평지에 조성된 논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단위 군수품 공장지대와 공장들의 사택지로 변모했다. 해안 매립지를 포함한 학익리의 드넓은 평탄지는 전쟁 물자 등을 생산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평가됐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계획된 공업지대와 산업시설은 크게 훼손됐고 그 중 일부는 재건됐다. 또 일부는 매각돼 주택 개발이나 학교 용지 등으로 쓰였다. 그리고 현재 학익동에는 한국전쟁 이후 세워졌던 거대한 산업용 굴뚝은 대부분이 사라졌고 고층 아파트 단지가 끊임없이 올라가고 있다.

논이 공장지대가 되고 혹은 바다를 메운 땅이 산업용지가 됐고 그 위에 굴뚝을 세웠던 자리는 세월이 흘러 결국 아파트·상가 단지로 바뀌었다. 단순히 역사적으로 필연적인 흐름일 수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돈이 되는 사업을 한결 같이 쫓아온 누군가의 욕망이 녹아 있다. 그렇다면 30년, 40년 후 이 무수한 아파트 단지들은 과연 무엇으로 다시 바뀌어 있을까. 100년의 역사를 봐도, 콘크리트의 수명을 고려해도 아파트 단지로 영원히 존속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같은 변화의 흐름 때문인지 아직 감나무 한 그루 품고 있는, 과거의 온기가 그대로 배어 있는 학익동 단독주택가가 오늘도 재개발을 기다리는 시간이 참으로 기껍지가 않다. 한때 선조들이 기대고 의지했을 학익동 담벼락은 내려치는 굴삭기에 조만간 부숴져 과거의 흔적은 낯선 마천루의 차가운 벽으로 대체될 것이다.

과거의 흔적과 자료를 디지털화하는 아카이브 사업이 그나마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려워 보인다. 낮고 평탄해 볕이 잘 들던 동네가 높고 그늘진 아파트 기둥으로 세워지는 흐름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군가는 반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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