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지금 우리는 코로나19의 습격을 받고 있다. 언론 보도를 보면 금세 하늘에서 공포의 대마왕이 내려올 것만 같다. 일각에서는 하늘길을 봉쇄하고 사회 곳곳에 칸막이를 치자고 연일 침을 튀기고 있다. 

중국 우한 발 코로나19가 불러온 이런 모습 뒤에 중국인 혐오와 괴담이 더해지고 있다. 일부 층에서 교묘히 이런 혐오를 부추긴다. 맞서는 올바른 소리가 없지도 않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특히 역사를 들먹여 80년 전 만보산사건을 들먹이는 언론까지 있다. 이건 단순한 오보가 아니다. 

1931년 7월 2일 ‘조선일보’ 장춘 주재원이 본사에 급전을 보냈다. 만주의 관헌이 조선 농민 다수를 살상했다고 조선일보는 호외까지 발행했다. 이 기사에 분노한 조선인들이 중국 요리점을 습격해 기물을 부수고 호떡집에 불을 질렀다. 더하여 중국인(화교)들을 폭행하기도 했다. 조선총독부 경무국 통계로 119명, 중국 정부 발표로 142명, 총독부의 비공식 집계로도 200명의 중국인이 죽었다. 다친 수효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파괴된 기물과 가옥 등도 부지기수였다. 

문제는 이 호외가 오보(誤報)였다는 사실이다. 아무도 죽지 않았음은 추후에 전해졌으나 우리 민중의 손에는 선혈이 낭자한 이후였다. 물론 이 호외 하나에 조선인들이 흥분한 것만은 아니다. 화교를 배척하는 사건은 이미 전례가 있었다. 화교들이 조선의 상권을 장악하고 근교농업을 개척해 많은 재물을 쌓았으나 조선 땅의 조선인 노동자들은 가난에 시달렸다. 이런 배경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저력을 보일 때가 됐음을 깨달아야 한다. 중국 우한 땅에서 날아온 교민들을 따뜻하게 품은 아산과 진천의 주민들처럼 말이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 많이 힘드셨죠? 아산에서 편히 쉬었다 가십시오." ‘우한 힘내라!’의 후속편치고 꽤 괜찮은 아름다움이 솟아난다.

여기저기서 괴담이 나오지만 미담도 적잖은 힘을 발휘하고 있다. 교민 수송기에 먼저 타겠다고 나선 대한항공 승무원들, 우한에 남은 교민들 집을 일일이 방문해 마스크와 체온계를 나눠주는 자원봉사자들, 밤낮으로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 마스크와 세정제를 후원하는 무명의 기부자들까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인간의 본성이 나타나고, 나라가 재난에 빠졌을 때 비로소 그 정부와 국민의 수준이 드러난다고 한다. 백번 지당한 말씀이다. 앞으로 어떤 재앙이 지구 곳곳에서 발생할지 모른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코로나19 습격 앞에서는 무력하다. 야생동물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수많은 가축에서 언제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해 지구촌을 위협하게 될지 모른다. 어쩌면 인간 살상용 무기보다 더 지독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감염된 사람이 가해자는 아니다. 피해자일 뿐이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성찰을 얻을 수 있다. 

트럼프 : 잘 알겠다. 우리도 나무 1조 그루 심기에 동참하겠다.

툰베리 : 아니, 나무 심기로는 불충분합니다.

트럼프 : 지금은 비관이 아니라 낙관할 때란다. 비관론을 퍼뜨리는 예언가나 대재앙에 대한 예언을 거부해야 돼.

툰베리 : 나무만 심어서는 안 되고 온실가스 배출을 당장 멈춰야 해요. 우리들 집이 불타고 있는데 당신들의 무대책이 불난 집에 부채질이나 하잖아요.

기후위기를 둘러싼 트럼프와 툰베리의 의식 차이는 70대 노인과 10대 소녀의 세대 차이 문제가 아니다. 돈벌이 중독에 빠진 정치경제의 지도자들은 우리 삶의 방식(소유·생산·소비·유통·분배·폐기 등등)이 무한한 가치 증식을 추구하는 자본과 상품, 화폐와 노동이라는 범주에 갇혀 있고, 미래를 사는 환경운동가는 생명과 공생의 원리를 지적하는 것이다. 생명과 공생의 원리, 미국 뉴욕에 갈 때도 비행기 대신 요트로 4천800㎞를 건넜던 10대 소녀의 그 진정성을 우리는 곱씹어봐야 한다. 모순에 눈감고 도덕에 호소하는 문화공존론이 아니라 힘겨워도 자본주의 세계 체계의 모순과 급진적 재구조화가 답이다. 내가 튼튼하고 남을 도와야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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