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동 인천시 중구 우현로 20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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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일본의 교류가 시작된 것이 2천700년이나 됐다. 일본 학계의 주장으로는 2천700년 전 일본 역대 천황들의 황조인 천조대신의 동생 소잔명조가 신라에 건너와 머물렀다고 한다. 이 자료에 의해 일본은 우리와의 교류로 보고 있다. 우리의 역사에서는 일본과 첫 교류에 나섰던 사람은 가야국왕이었던 소갈질지가 일본을 방문한 것이 첫 교류였다. 소갈질지 왕은 일본에서 수년 동안 체류하고 돌아온다. 2053년 전, 일본 제10대 숭신천황 65년 7월에 방문하고 제11대 수인천황 2년 2048년 전에 귀국한다. 일본과 교류가 시작되면서 일본으로 귀화하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2047년 전, 수인천황 3년 3월 신라왕자 천일창이 일본으로 건너가 귀화인 제1호가 된다. 일본 이두도 삼도산 부근 출석군 소판촌에 천일창이 생활하던 고택 등의 고적이 남아 있다. 학족사, 수류신사, 생석신사에는 천일창의 신위가 있으며 매년 제례를 거행한다. 284년 제15대 응신천황 15년 8월에는 백제 고이왕의 아들 아직기가 일본으로 귀화하고 그 다음해에는 왕인이 일본에 유학과 신기술을 전하게 되고 여러 분야의 기술인 집단을 이끌고 일본으로 귀화했다. 한국에 대해 친근한 모습을 보여 줬던 아키히토 전 천황은 자신의 몸속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말해 일본인들에게 놀라움을 주게 됐다. 

일본으로 건너간 제50대 환무천황의 생모인 백제 무녕왕의 후손 화씨는 인천 역사의 시작이었던 비류왕하고도 뿌리가 맞닿는 인연을 갖고 있었다. 일본으로 귀화하는 사람들이 가야, 신라, 고구려, 백제,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져왔다. 귀화해 성씨를 하사받고 대대로 생활해 오고 있다. 일본 학자들의 주장처럼 일본 인구의 반은 한국인 후손이라고 말해 오고 있듯이 뿌리를 한국에 두고 있는 일본인들이 많은 것이다. 일본 내 생활 곳곳에 한국인 후손의 일본인들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일본 정부 인사로는 방위상 고노오, 후생노동상 가토, 정치인들 중에서는 자민당 정조회장 사카, 공명당 대표 야마구치, 공명당 정무회장 우다, 공산당 정책위원장 타무라, 야당 대표 마쯔다 등의 정치인들이 많았다.

일본 참의원 선거에 참여하는 의원 후보들의 성씨를 살펴보는 일이며, 신문과 방송에 출연하는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 아나운서, 방송제작자, 신문 주필, 편집자, 기자, 상점, 상인들의 성씨를 살펴 본다면 어느 시대에 일본으로 귀화한 한국인 후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재미있게 신문과 방송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올해 개최되는 도쿄올림픽 대회에 출전하는 일본 선수들 중에 귀화인 후손들이 얼마나 활약하는지를 살펴보고 방송 시청하는 일도 재미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명, 기업체, 상품, 상호에서도 성씨를 내세워 붙여 사용하는 곳이 많이 있다. 일본 여행을 할 때 이런 부분도 살펴본다면 역사 공부도 되고 친근감 있게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일반 시민들 또는 기업체에서도 일본인과의 친선교류와 업무 교섭에 있어 필요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우리의 옛 사람들 가야, 신라, 고구려, 백제, 고려,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귀화하고 받은 일본 성씨들을 여러 자료들을 보며 찾아봤다.

전남 나주, 전북 무주, 진안, 장수, 경북 경주, 달성, 성주, 청도, 고령, 경남 함안, 고성, 진주, 거창, 김해, 동래(부산)지역은 우리의 가야국 영토였다. 일본 역대 천황들의 황조인 천조대신의 동생 소잔명조가 이곳으로 건너와 수십여 곳의 작은 국가들을 총괄 통치했던 곳이라 일본 측에서 이 지역을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곳이다. 임나라는 이름은 일본 제10대 숭신천황이 명명했다. 이 지역 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귀화했다. 

일본으로 귀화한 가야인의 성씨는 27개, 신라인은 52개, 고구려와 고려인은 117개, 백제인은 145개, 조선인은 58개의 성씨가 있다. 이 중에 야마구치, 오오우치는 인천역사의 시작으로 여기는 비류왕 일가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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