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부터 슬픈 한 사람이 있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형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아 평생을 살아간 이 남성은 형을 대신해 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우울한 이름의 짐 위에 집안의 정신병력 또한 그에게 유독 강하게 유전됐다. 성인이 돼 아버지에게 인정받고자 아버지처럼 목사가 되고 싶었지만 시험에 낙방하며 좌절됐다. 이후 다소 늦은 나이에 그림에 재능이 있다고 판단한 그는 만 27세에 화가가 되기로 한다. 그림에 전념한 8년간 무려 800여 점의 작품을 완성했지만 평생 단 한 점의 그림만을 팔 수 있었다. 동생의 헌신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가지 못했을 힘들고 외로운 예술가로서의 길은 그러나 37세의 나이에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이처럼 비극적인 일생을 살다간 화가는 주지하고 있다시피 빈센트 반 고흐다. 드라마틱한 그의 삶은 이미 여러 편의 영화로 제작된 바 있다. 그 중 ‘러빙 빈센트’는 2017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고흐의 그림을 살아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으로 재창조한 이 영화는 10년간 120여 명의 화가들이 6만5천 장의 그림을 그려 완성시켰다. ‘러빙 빈센트’는 회화와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무너뜨려 관객들을 명화 안으로 이끈다.

영화는 빈센트가 죽은 지 1년 후, 그가 동생 테오에게 남긴 편지를 배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살아생전 빈센트와 돈독한 사이였던 우편배달부 조셉은 아들 아르망에게 전하지 못한 편지를 직접 전해줄 것을 부탁하고, 그렇게 아르망의 여정은 시작된다. 

사실 아르망이 기억하는 빈센트는 자신의 귀를 자른 정신 나간 사람이었다. 그러나 여행 도중 만난 다른 사람들은 진실한 예술가, 위험하고 외로운 사람, 훌륭하고 조용한 청년 등으로 회상했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상반된 의견이 오가는 등 빈센트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가 넘쳐났다. 특히 두 의사의 진단이 달랐는데, 부검의 마제리 박사는 자살이라고 볼 수 없는 총기 상처와 사고가 있었던 밀밭에서 여인숙까지 걸어온 사실에 의문을 제시했다. 반면 그를 치료한 가셰 박사는 다소 이상한 정황에도 불구하고 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었던 불안한 정신상태를 지적한다. 

‘러빙 빈센트’는 화가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겉옷을 살짝 걸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결론에 이르러서는 다소 평면적으로 끝맺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스토리보다 중요한 것은 시각적인 경험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생의 찬란한 에너지, 태양과 별들의 아름다움, 이웃을 보는 따뜻한 시선들이 영화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생동감 넘치는 특유의 붓의 질감을 재현한 이 작품은 영화에 참여한 100여 명의 예술가들이 고흐에게 보내는 헌사와 같은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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