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선 후기에 들어와 장시(場市)가 발달하고 금속화폐가 사용되기도 했으나, 개항 이전 조선의 경제는 농업중심의 자립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대외 교역에 있어서도 청나라와 대일 무역이 활발하게 전개되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봉건경제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1882년 제물포에서 미국과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에 이어 영국, 독일과의 조약은 조선이 더 이상 서구적 체제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조선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경제체제에 적응해야만 했다.

조선에 제일 먼저 진출한 서양의 상사는 1883년 영국계 이화양행(怡和洋行)이었다. ‘양행’이란 중국에서 외국과의 무역 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서양식 상점을 뜻했는데, 이화양행의 조선 진출은 청나라 추천으로 조선의 재정 고문관이었던 독일인 묄렌도르프의 주선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 인천항 중국인 거류지 앞바다에 폐선을 띄워놓고 사무실 겸 창고와 일꾼들의 거주지로 사용했다 하는데, 그들의 내한 목적은 교역보다는 처음부터 광산채굴권에 있었다. 1884년 11월에 이르러서는 영업 부진으로 인해 조선에서 철수했다. 

1883년 조독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1884년 6월에 개점한 독일계 세창양행(世昌洋行)은 독일 마이어(Meyer)상사의 제물포 지점이었다. 설립자 마이어는 주로 함부르크에 거주하면서 유럽과 동아시아 무역을 총괄했고, 칼 볼터는 세창양행 지사장으로 파견돼 당시 조선의 외교·통상·관세·재정을 주도하고 있던 묄렌도르프와 긴밀한 협조 아래 경제권을 확장시켜 나갔다. 설립 초기에는 주로 물물 교환을 하는 무역상이었지만, 정부와 상인들에게 차관 및 대출도 제공하면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나중에는 해운사업, 근대 기기 도입, 기술자 고용 알선, 광산채굴, 무기판매 등 아주 다양한 분야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세창양행은 단순한 독일의 무역상이 아니라 당시 외국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가던 독일의 전방위적 통상 전초기지였던 것이다. 

한편으로 세창양행은 한국 근대사에 ‘최초’라는 타이틀로도 유명하다. 1884년 각국공원(各國公園) 정상에 세운 직원들의 사택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었다. 또한 1886년 2월 22일자 ‘한성주보’에 실린 ‘덕상 세창양행고백’이라는 광고 역시 최초였다. 당시 수입한 자명종, 유리, 각종 램프, 서양 바늘, 금계랍, 자래화(성냥) 등은 일반인이 경험하지 못했던 품목이었다. 얇고 견고한 세창바늘은 주부들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성냥은 발화와 휴대가 용이하다는 편리성 때문에 점차 사회 전반으로 소비열풍이 확산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금계랍 광고는 독립신문의 발간이 중단될 때까지 계속됐는데, 금계랍은 원래 말라니아를 낫게 하는 의약품이었으나 당시에는 만병통치약으로 사용됐다. 더하여 1897년 4월께부터 광고에 태극마크를 사용해 조선인 소비자들에게 친밀히 접근하고자 하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했다. 

우표와 관련한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는 문위(文位)우표로 디자인에서 인쇄까지 제조 작업은 모두 일본에서 이뤄졌으나 갑신정변 발발로 우정총국이 해체되자 일본에서 뒤늦게 도착한 3종의 우표 130만장에 대한 인쇄대금 문제가 발생했다. 이 필요없게 된 우표의 인쇄 대금을 대신 지불한 것이 세창양행이었고, 독일로 가져간 문위우표는 훗날 우표수집가들에 의해 상당수 국내로 다시 들어왔다. 후일 그 희소성으로 인해 천정부지의 값이 됐음은 물론이다. 

마이어는 1886년 3월 조선 정부로부터 독일주재 조선국 총영사로 임명돼 조선과 독일 간의 외교 업무를 담당했는데, 1889년에는 함부르크 산업박람회에 한국 물품을 소개하고 함부르크 민속학박물관에 한국 유물을 전달하는 등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한국과 독일과의 교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세창양행은 1914년 일본의 대독(對獨) 선전포고로 서울의 총영사관과 함께 폐쇄된 이후 명맥만 유지하다가 한국전쟁 때 인천에서의 활동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인천과 독일의 ‘문화외교’에도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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