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인간은 특정한 상황이나 사건에 대해 스스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중심적 편향성에 빠져 자신의 이익과 관심에 부합하는 것들만 선택적으로 보기 일쑤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은 더 말할 것도 없겠지만 많은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이 대통령과 집권 여당을 지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정부의 대북 기조가 북한과의 관계를 대결이 아닌 화해 노선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화 방식에는 북한을 돕고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수반돼야 한다. 일각에서는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서라도 전쟁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돈으로 평화를 살 수 있다는 의식의 근저에 북한과의 갈등적 사태를 회피하려는 패배주의적 태도가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대한민국에 대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은 머지않아 더욱 구체적으로 그 실체를 드러낼 것이다. 이번에 김정은이 노당동 중앙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한 발언의 핵심을 따져봐도 그렇다. 즉 우리 인민들이 당한 고통과 그동안 핵을 개발하느라고 억제된 발전의 대가를 깨끗이 다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행동에 들어가겠다고 한 선언이 그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북한의 노골적인 위협이 거세질수록 지금의 대북 정책하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경제적 지원밖에는 없다는 믿음과 주장들이 난무할 것이다. 하지만 당장의 땜질은 가능할지언정 돈으로는 절대로 북한의 악의적인 위협을 막을 수도 없고 지속적인 평화를 얻을 수도 없다. 악질 깡패나 저질 폭력배를 금품으로 달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의 보수 세력이 안보에 대해 제정신인 것 같지도 않다. 마치 미국이 화끈하게 나서서 김정은을 제거하고 북핵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줄지도 모른다는 얼빠진 기대감에 찬 사람들도 많으니 말이다. 미국의 항공모함과 전투기와 전폭기가 아무리 위력적이고 막강해도, 광화문에서 아무리 열심히 미국 국기를 흔들고 목청껏 트럼프를 연호해도 한미동맹과 무관하게 결코 미국은 우리 안보를 직접적으로 책임져 주지 않을 뿐더러 책임질 수도 없다. 

그저 말로 평화를 부르짖거나 적을 매수해서 나라의 안보를 담보할 수는 없으며 외세에 의존해서 국가의 안전을 도모할 수는 더더구나 없다. 안보는 우리 스스로 국가에 대한 희생을 각오하고 개인적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불굴의 의지와 강한 신념을 우선적으로 필요로 한다.

지난달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2032년 하계올림픽 남북 공동 유치와 개최를 추진하기 위한 계획안을 의결한 바 있다. 스포츠가 남북한 화해와 한반도 평화의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북한의 지금까지 행태로 보아 아직 요원한 일이다. 아예 주한미군을 철수시키자는 주장이 더 솔직한 심정이었겠지만 서울시장은 남북 올림픽을 위해 2032년까지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자는 정신 나간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통일부 장관은 2008년에 있었던 우리 관광객이 북한 경비병에게 사살 당한 금강산 피격 사건을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언급한 바도 있었다. 이 통일부 장관이 수장인 통일부는 북한의 외화벌이에 일조하기 위해 아무런 보호 대책 없이 한국 국민의 북한 관광을 부추기고 있다. 

북미회담이 실패하고 트럼프와 김정은이 서로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양국 관계가 교착 상태에 빠진 것은 우리 정부가 미국에는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할 것이라고 하고 북한에는 미국이 경제 제재를 전면적으로 풀 것이라고 하는 잘못된 시그널을 서로에게 전했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은 비싼 미국산 무기를 마구 사 주고 앞서 지적했듯이 광화문에서 성조기를 흔든다고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현재 평화를 얻기 위해 중국에 굴종적이고 북한을 옹호해야 할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미국에 우호적이고 북한을 경계해야 할지 기로에 놓여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가짜 평화는 돈으로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진짜 자유는 그 어떤 가치와도 바꿀 수 없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묵가의 말은 전쟁도 불사하겠는 담대한 용기와 단호한 결심에서 진정한 평화와 자유가 지켜진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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