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소통’이 화두가 됐다. 의사소통(意思疏通)의 줄임말로 사용되는 소통의 사전적 의미는 막히지 않고 잘 통한다거나, 뜻이 서로 통해 오해가 없음을 뜻한다. 소통을 내세우지 않으면 불통이라는 낙인이 찍힐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인지 끊임없이 소통을 강조한다. 특히 선출직 정치인과 그들을 둘러싼 이들은 더 그렇다. 민초들은 언제나 오해 없이 잘 통하고 있음에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서는 완력으로 소통을 외친다. 

마치 스스로의 불통을 감추기라도 하듯 말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의 소통은 교조적이다. 자신들만이 통하는 오만과 독선을 소통이라고 내세운다. 누구도 소통이라고 생각하지 않음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의사소통 방식을 소통이라고 우기며 전리품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이 말하는 소통은 불통이다. 그래서 화해와 용서가 아니라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박남춘 시장 취임 이후 시장을 병풍처럼 둘러싼 측근들의 행태는 공직사회 내부에서 늘 입방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조직이 공조직을 제치며 시정을 좌지우지한다는 비판이다. 이미 지하도상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상생협의회 구성을 주도하는 과정에서도 주객이 전도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여기에서도 그들이 내세우는 것은 소통이다. 

소통을 내세우고 있는데 왜 공조직에서는 불통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가. 소통을 앞세운 오만 때문이다. 소통부서 간부 대부분이 박남춘 시장과 맥이 통하는 정무직 인사라는 점에서 그 오만의 크기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된다. 총선을 앞두고 현안 해결이 생각보다 늦어지면서 조급증도 생겼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공조직을 제치고 문제를 주도해 마무리하려는 시도는 시장을 배경으로 한 오만으로 비칠 수 있다. 시장의 뒷배가 된 그들에게 공조직 누가 대응할 수 있겠는가. 이들이 아무리 소통을 강조한다고 해도 그것은 소통이 아니라 불통 그 자체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시장들을 지켜봐 왔다. 그리고 시장 측근이라는 이들의 오만방자와 그들의 쓸쓸한 끝도 지켜봤다. 영혼 없는 소통을 강요하다 보면 그것은 소통이 아니라 우스개 의미의  ‘쑈통’이 될 수 있다. 조금 더 선을 넘기 전에 지금은 그들 스스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살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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